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51
신창 맹씨는 맹자의 후예이다. 우리 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상고할 수 없으나 맹자의 50세손 우현이 고려 원종 때 국자감을 지냈고 그의 셋째 아들 리가 시중을 지내고 신창백에 봉해졌으므로 맹가를 시조로 리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신창으로 하여 계세하고 있다. 리의 향사일은 음력 10월 1일이다. 13(世세) 14(瑞서) 15(萬만) 16(淑숙) 17(大대) 18(遠원) 19(欽흠 鎭진) 20(淳순) 21(述술 植식) 22(燮섭) 23(在재 敎교) 24(鎬호) 25(一일 永영) 26(柱주 秀수) 27(烈열 煥환) 28(奎규)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50
에 의하면 충주 매씨는 그 조상이 중국 산동성 제남부에서 와서 매씨로 사성받고 충주에 세거하여 충주로 창관하였다고 나와 있다. 인물로는 이조 중종 때 황간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병환에 단지로 효성을 다해서 후일 정문이 세워졌던 효자 매한손이 있다. 분포지는 경기도 부천, 시흥, 안성, 전북의 김제, 충남 논산, 황해, 서흥, 함북, 청진 등지이고 도합 16가구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47
시조 李翰(이한) 은 덕망이 높고 문장이 탁월하여 신라 문성왕 때에 사공벼슬을 지냈으며 그후 대대로 신라조에 벼슬해 오다가 그의 6세손 극휴에 이르러 고려조에 벼슬하게 되어 사공을 지냈다. 18세손 안사(목조)는 대대로 전주에 살아온 호족이었는데 당시 전주에 새로 부임해옴 지주가 탐학하고 오만하여 그를 규탄하니 지주가 군사를 휘동하여 보복하러 드는지라 이를 피해 강원도 삼척으로 이거했다. 그 후 전주 지주가 안염사가 되어 삼척으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그 보복을 꺼려 다시 함경도로 옮겼다가 원 나라 간동으로 가 그곳에서 5천호의 다루하치 벼슬을 지냈고 안사의 아들 행리(익조) 행리의 아들 춘(도조) 춘의 아들 자춘(환조) 등이 천호 벼슬을 계승해 왔는데 자춘은 공민왕때 사복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조 한의..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28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25
시조 양을라는 태고에 한라의 모흥혈 (삼성혈)이 터지고 그곳에서 모라천하에 처음 인간으로 화생한 삼을라의 장인데 그 강생연대는 유사이전에 속하여 고증할 수 없다. 그 무렵 현 강진일대에 세워진 벽랑왕국이 서해 가운데 신인이 강생하여 장차 개국할 것이라 예언하고 딸을 보내니 양을라가 그를 취하여 탐라국을 개국 왕과 왕비로 즉위하여 양성으 원천을 이루었고 세손이 900여년 향국했다. 그의 원손으로 탐라의 귀족인 양탕이 광순사의 직함으로 신라에 입조하니 국왕이 예절을 갖추어 국빈대우를 하고 성주왕자의 작호를 내리고 의관을 주어 신라의 조복을 갖추게 했다. 그때 「良」을 「梁(양)」으로 기록한 것이 양씨로 고쳐진 여유가 되었고 탕의 후손 순과 우경이 신라 말기에 제주와 남원으로 각각 득관하여 분적하였다. 南原粱..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24
(경령계) 시조 경령은 송나라 두릉사람으로 송 태종때 병부상서로 진종의 옹립을 반대하다 실패 소주자사로 좌천되자 그의 둘째 아들 중서사인 지건을 데리고 정처없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 우리 나라 궁지현(만경)에 표착하였다. 고려 목종이 이를 이미 알고 좌사관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만경)를 식읍으로 하사하고 두릉군을 봉하였다. 후손들이 그곳에 정착 세거하면서 본관을 두릉이라 하였다. 묘소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에 있다. (교림계) 시조 교림은 명나라 사람으로 기주자사를 지냈으며 아들 사층은 명나라 상서를 지내다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에 원군으로 와서 귀하 대구에 정착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그의 본향인 두릉을 본관으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23(基기) 24(鍾종) 25(洪홍) 26..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23
시조 중서는 한나라 무왕(BC..150∼87)때의 대유이다. 그의 묘소는 장안에 있는데 그앞을 지날때의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하마하였다 하여 그 묘명을 하마능이라 했다. 그 이후의 계대는 실전되어 상고할 수 없으나 그의 후손 승선의 영귀에 의해 그는 조선태종때 광천백에 추봉되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의 후손 박 에게 3형제(계선 승선 인선)가 잇었는데 계선은 중국에서 벼슬을 하였고 승선은 명나라 홍무(1368∼1398)년간에 안위사로 우리나라에 와 영천군에 봉해지고 영천군에 살게 되었으며 인선은 홍무초에 부의 절의지간인 서달이 태조에게 천거하여 지휘가 되어 태조를 따라 전공을 세움으로써 이부상서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중서를 시조로 그리고 승선과 인선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천으로 삼아 세계를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7
동방씨는 중국 고대의 복의씨의 후예라 하며 우리 나라 동방씨의 중시조는 1792년(선조16) 문과에 급제하고 전적을 지낸 숙으로 알려지고 있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전국에 50여 가구가 주로 평북 안주 박천 등지 이북에 분포해 살고 있었으며 대구 장단등지에도 몇 가구가 있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6
옛 문헌에 보이는 성씨로 1960년 국세조사 당시 서울 충남 경북 등지에 6가구 30여명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본관은 청주 돈씨 단본이다.
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자 목천지방의 백성들이 특히 따르지 않고 자주 소요를 부리므로 그곳 사람들에게 豚(돈), 象(상), 牛(우) 등 동물의 이름을 성으로 갖게 했는데 그 후 이성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頓(돈), 尙(상), 禹(우)로 개성했다고 되어 있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평남 대동 강서 황해도 안악 황주 등 의북에 36가구가 분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