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40
사공씨의 시원은 진나라 때 가행이 사공이란 벼슬을 하고 벼슬 이름으로 사성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의 후손 사공도가 당나라 애제 때 한림학사로 예부상서를 지냈는데 신라 효공왕 때 동요학사 7인과 함께 우리 나라에 귀화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사공씨의 발원이 되었으나 문헌과 고증이 없어 소목계통을 밝히지 못하고 그의 후손 중상이 고려 충숙왕 때 벼슬하여 공을 세우고 효령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효령이라 하였다. 21(鉉현) 22(永영) 23(相상) 24(炳병) 25(圭규) 26(鎭진) 27(洙수) 28(桂계) 29(烈열) 30(在재) 31(錫석) 32(汶문) 33() 34(熙희) 35(坤곤) 36(銖수)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9
시조 如鏡(여경)(시호:문혜)은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사람으로 그의 선계와 원향에 대해서는 상고할 수 없다. 그는 명나라때 예부시랑, 내각한림을 지내면서 조선 세조 때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들어와 정착 세거하고 빙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세조는 그를 국빈으로 예우하고 이조참의를 제수 경주 부원군에 봉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시조 묘소는 경기도 기풍군 덕북면 우산남록에 있고 곡성의 통명사에 제향되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8
빈씨는 본래 중국의 성씨로서 주나라 경왕때 빈골주라는 사람이 대부 벼슬에 있었고, 노나라에 빈모가라는 사람이 있어 공자를 섬겼다고 한다. 달성 빈씨의 시조는 우광으로서 그는 모가의 후손이며 중국에서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서자 우리나라로 망명 크게 학풍을 진작 시켰다. 고려 충숙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수성(달성,대구)군에 봉하였다고 한다. 빈씨의 본관은 수성, 달성, 대구 영광의 4본이 있는데 그중 수성, 달성, 대구는 기실 동일본이며 영광 빈씨만은 그 유래를 상고 할 수 없다. 빈씨 분포는 경남의 100여 가구로 으뜸이고 황해도, 전북, 경북, 전남, 충남, 경기, 충북의 순으로 수백 가구가 거의 전국적으로 펼쳐져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7
빈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청나라 덕종 때 몽고인으로서 원외랑을 지낸 빈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나라 빈씨는 그 후손이 귀화한 것이며 확실하며 서울을 위시하여 경기 지방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빈씨의 본은 대구 담양 2본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6
용서는 중국 진한시대의 군 이름으로 지금의 감숙성 임조부에서 몽창부의 서쪽에 걸친 곳으로 본관 자체가 중국 지명이며 또 중국 주나라 양왕 때에 진나라에 비정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보아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임이 분명하다. 비씨의 관향은 용서 단본이며, 평남 강동, 황해도 곡산 충남 공주에 극소수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5
시조 부을나는 양을나 고을나와 함께 제주도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에서 용출한 삼신인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동쪽으로부터 떠 내려온 상자를 건저 세 미녀와 오곡의 씨앗과 망아지 송아지를 얻어 세 미녀를 베필로 삼고 제주 일도, 이도, 삼도 세 지역에 할거하여 목축과 농사를 영위 하였다. 그로부터 부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나 세계가 실전되어 원손 득시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6(宗종) 17(啓계) 18(彬빈) 19(載재) 20(錫석) 21(斗두)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4
봉씨는 문헌에 1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봉우를 시조로 한 하음봉씨와 시조 미고인 강화봉씨가 있을 뿐 그 외의 17본은 미상이다. 江華奉氏(강화봉씨) 시조는 미상이며 아마도 하음(강화지방)봉씨의 분파인 듯 하다. 이밖에도 광주 안산 등 18본이 있으나, 모두 시조를 상고할 수 없다. 봉씨는 주로 황해도 수안 해주 연백 등지에 집중해 있고 경기도 안성, 평택, 충남 보은 전북 고창 전남 장성 영광 나주 등지에 1천여 가구가 살고 있다. 河陰奉氏(하음봉씨) 시조 봉우는 고려 인종 때에 위위소랑, 정당문학, 좌복사로 공을 세워 하음백에 봉해졌다. 1107년(예종2) 한 노파가 강화의 하음면 연안에 석함이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건져내어보니 그 속에 범상치 않은 아기가 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아기를 왕에게 바..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3
시조는 알 수 없으며 본관은 경주 단본이다. 봉씨는 전국적으로 겨우 몇 가구가 살고 있을 뿐이며 본시는 奉(봉)씨였는데 민적법 시행때 오기된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2
시조 智謙(지겸)은 태봉의 마군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횡폭해지자 919년(고려 태조 천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재한 개국공신 대장군이다. 그 선조는 당나라 때의 학사로서 신라 말에 난을 피하여 우리 나라에 와서 면천(충남 당진군 순성면)에 정착하여 당시 서해안에 들끓던 해적들을 소탕하여 생활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면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당진군 순성면 양유리에 시조의 제단이 있으며 향사일은 음 10월 1일이다. 21(承승) 22(世세) 23(雨우) 24(淵연) 25(吉길) 26(廷정) 27(之지) 28(玉옥) 29(台태) 30(景경) 31(來래) 32(欽흠) 33(潤윤) 34(來래) 35(箕기) 36(圭규) 37(鎭진) 38(洙수 淳순) 39(權권 榮영) 40(然연 憲헌 熙희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8
변씨는 문헌에 67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邊安烈(변안열)을 시조로 한 원주 변씨와 변경을 시조한 장연변씨 그리고 변여을 시조로한 황주변씨 이외에는 미상이다. 또한 이상 3본의 인구수를 보면 원주 변씨가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原州邊氏(원주변씨) 시조 安烈(안열)은 송나라 말기에 고려에 기화하여 상장군으로 태천백에 봉해지고 황주변씨 시조가 된 여의 후손이다. 연대는 상고할 수 없으나 그의 조상이 심양으로 들어가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1351년(충정왕3) 수장으로 노국공주를 배종한 공으로 추충량절선위, 익찬보조공신벽상삼한삼중 대광문 하찬성 사겸판예의 사사영삼사동평장사로 원주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원주를 식읍으로 하사받고 원주에 정착세거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황주 변씨에서 분적 본관을 원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