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씨(粱氏)

시조 양을라는 태고에 한라의 모흥혈 (삼성혈)이 터지고 그곳에서 모라천하에 처음 인간으로 화생한 삼을라의 장인데 그 강생연대는 유사이전에 속하여 고증할 수 없다. 그 무렵 현 강진일대에 세워진 벽랑왕국이 서해 가운데 신인이 강생하여 장차 개국할 것이라 예언하고 딸을 보내니 양을라가 그를 취하여 탐라국을 개국 왕과 왕비로 즉위하여 양성으 원천을 이루었고 세손이 900여년 향국했다. 그의 원손으로 탐라의 귀족인 양탕이 광순사의 직함으로 신라에 입조하니 국왕이 예절을 갖추어 국빈대우를 하고 성주왕자의 작호를 내리고 의관을 주어 신라의 조복을 갖추게 했다. 그때 「良」을 「梁(양)」으로 기록한 것이 양씨로 고쳐진 여유가 되었고 탕의 후손 순과 우경이 신라 말기에 제주와 남원으로 각각 득관하여 분적하였다.

 

 

南原粱氏(남원량씨)

 

시원은 양을라(良乙라)이며 중조 양우경(梁友諒)은 양탕의 후손으로 757년(신라경덕왕) 대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하여지고 포상이 가사되어 남원으로 득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능량(병부공) 양능길(예성군) 양성준(청주파) 양수정(대방군) 양주운(용성군) 양윤위(장영공)을 각각 파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濟州粱氏(제주량씨)

 

중조 양순은 682년(신라 신문왕2) 신라에 입국하여 왕에게 표문을 올려 국학에 입학하였고 한림학사로 초탁되었다. 그러나 대신들이 외국인 고관을 꺼려 승진을 못하게 되자 국왕이 한라군을 봉함으로써 득관한 중조가 되고 본관을 제주로 하게 되었고 5개파로 크게 나누어 양보승(유격 장군파) 양중덕(천호공파) 양유침(사직공파) 양흥(중랑장공파) 양의(서두봉관파)를 각각 파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행 렬 자>

 

(양씨대동보)(세수는 상고할 수 없음)

1(水수 泰태 漢한 淵연) 2(木목 集집 根근 來래) 3(火화 性성 魯노 悳덕) 4(土토 中중 培배 周주) 5(金금 兌태 鎭진 義의) 6(水수 康강 澤택 漢한) 7(木목 槿근 極극 本본) 8(火화 憲헌 榮영 炫현) 9(土토 孝효 敎교 堯요) 10(金금 庚경 銓전 銖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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