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5
일세조 신의 선세계는 고려 중엽에 중국하남에서 8학사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세거한 공순인데 그외의 자세한 세계는 알 수 없다. 그의 손자 향이 고려 축숙왕때 원나라에 가서 공주를 배종한 공으로 남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후손 신(자.성의)이 경향에 널리 알려진 학자로 남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후손 신(자.성의)이 경향에 널리 알려진 학자로 남원군에 봉해짐에 따라 본관을 남원이라 하였다. 묘소는 평북 의주군 영삭면 천마동에 있다. 13(言(변)) 14(人(변)) 15(木(변)) 16(火(변)) 17(士(변)) 18(金(변)) 19(水(변)) 20(木(변)) 21(火(변)) 22(土(변)) 23(金(변))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4
풍양도씨는 여러 문헌에 가끔 보이는 성씨로 고려 충렬왕 때 성기가 환신으로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상당히 오랜 성씨로 보인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전국에 1백여 가구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김포, 개풍군 일때와 황해도에 분포되어 있었다. 도씨로 문헌에 보이는 남양 청주 순천 등 10여 본관이 된다.
도씨는 문헌에 15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서제 성주 전주의 3본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고이다. 서제 도씨는 문헌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성씨로서 경북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에 25세대가 살고 있을 뿐이며 성주도씨는 중국에서 동래귀화한 씨족으로서 도순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고 전주도씨는 강원도 홍천군 주익면 남당리에 25세대가 살고 있을 뿐 그의 유에 대하여는 상고하지 못하였다. 西齊都氏(서제도씨) 1930년 국세조사 때 경북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에 25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옛 문헌에서는 상고되지 않는 성씨이다. 星州都氏(성주도씨) 시조 순의 선세계는 중국 려양 사람이다. 한무제 때의 시는 수성의 시조이며 조는 고구려 유리왕때 공신이며 미는 한나라 환제 때 백제에서 정승을 지냈으며 진..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3
등 문헌에도 보이지 않는 성이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제주도에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가 1960년 국세조사 때는 인구가 400여명으로 불어난 것을 보면 그 1가구 말고도 다른 곳에 몇 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도씨는 고성 단본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2
대씨는 본래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성씨이다. 발해가 망하자 그의 후손 광현이 926년에 고려 태조에게 투화하여 왕씨를 사성받았다는 것은 알려지고 있으나 오늘날에 전하는 대산대씨와 발해대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상고 할 수 없다. 1930년 국세조사때 밝혀진 것을 보면 전남 영광에 10여 가구등 12가구가 있는 것으로 안다. 密陽大氏(밀양대씨) 시조 중상은 원래 당나라 무장으로서 당왕으로부터 진국공에 봉해졌다. 그의 초명은 걸걸중상이었는데 걸걸은 우리말로 걸지다. 걸걸하다는 뜻으로 한자로 풀이하여 대자를 붙여 비로소 대씨성이 되었다. 그의 아들 조영이 발해국을 건국 태조가 된후 16세 걸친 228년 동안 왕권을 유지해 오다가 그의 17세손인 연림왕 마지막으로 발해국이 망하자 연림왕의 아들 대탁이 자손들을..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10
시조 성은 중국 절강성 명주 사람으로 그의 선세계는 송나라 징종때의 승상 각의 6세손이라 한다. 원나라 말기에 병난을 피해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고려조에서 사평순위부평사 등을 역임하고 조선 왕조 개국원종 공신으로 호조, 병조, 공조의 전서를 역임했다. 태종때에 밀양이란 관을 하사 받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9
옛 문헌에 보이는 성씨이나 1930년 국세조사때 경남 동래에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본관은 한산단씨 단본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8
우리나라 문헌은 물론 중국에도 없던 성씨로 보인다. 연안을 본관으로 하는 憚씨가 문헌에 보이고 연안단씨가 있는 것을 보아 혹시 동음에서 나온 표기의 잘못이 아닌가 하나 1930년 국세조사 당시 1가구가 경기도 부처군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7
본관 교동은 강화도에 딸린 작은 섬으로 연산군이 귀양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 그곳에 귀양갔던 신비의 후예가 아닌가 싶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수안 황주등 황해도 일대에 30여 가구등 40여 가구가 있었으며 1960년대 국세조사 당시에는 50여명이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뇌氏(뇌씨) 옛 문헌에 나타난 성씨이나 1960년 국세조사 당시 충북에 1가구 경기도에 1명 등 모두 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노씨는 문헌에 64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본서에는 강화, 광주, 함평, 밀양 등 4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에 대하여는 미상이다. 노씨는 본래 중국 주 나라 때 백리가 노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이 노를 성씨로 삼게되었다 한다. 강화 노씨는 고려 명종때 이부상서를 지낸 노용신을 시조로 하고 광주노씨는 노필상을 시조로 하며 밀양노씨는 노중연을, 함평노씨는 노목을 시조로 하여 각각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江華魯氏(강화노씨) 시조 용신(시호 충양)의 선세계는 주나라 백리의 왼손으로 고려 고종때 강화현령으로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강화 천도에 공을 세워 강화군에 봉해지고 토지를 하사 받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화에 정착 세거 하면서 본관을 강화라 하였다. 53(仁인) 54(誠성) 55(柱주) 56(參삼) 57(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