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7
에 의하면 범씨는 안주 단본으로 시조 영부의 선세계는 중국 하남 출신이다. 그는 우왕 때 문화안집사로 있었고, 현재 그 후손은 극소수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6
시조 승조는 원래 원나라의 예부사랑으로 노국공주를 배종하여 우리 나라에 왔다. 그의 아들 유수는 문하시랑으로 여진의 난에 참가하여 토평한 공으로 공훈 1등에 금성군으로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금성이라고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21(潤윤) 22(植식) 23(熙희) 24(奎규 均균) 25(鍾종 鎭진) 26(源원) 27(秉병) 28(烈열) 29(載재) 30(鎬호) 31(泰태)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5
시조 宇經(우경)은 중국 소주인으로 황제헌원의 16세손을병의 후손이다. 그는 780년 동래하여 계림자옥산하에 정착하면서 신라조에 사관하여 좌복사공대사도에 이르고 백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창직을 중조(1세)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중조의 증손 휘가 고려 때 대사마 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졌다는 설이 있고 또는 중조의 9세손 천장이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으로 수성백에 봉해지고 고려조에서 수원백에 봉해짐으로 수원으로 하였다는 양설이 있다. 이 밖의 염포, 부여, 대흥백씨는 모두 수원백씨의 분파이다. 시조의 묘소는 경북 월성군 안강읍 옥산동. 향사일은 양 5월 첫 일요일. (수원파) 16(榮영) 17(文문) 18(允윤) 19(..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4
배씨의 시원은 신라 개국의전(BC 57)에 6부촌장의 일인인 김산가리촌장 지타(태사공)가 다른 5부촌장과 함께 알천 양산암라정방림간에서 부득하여 수양한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재하고 개국 1동 원훈에 서훈 총재태사에 오르고 그후 32년(유리왕9) 김산가리촌을 한지부로 고치고 배씨로 사성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나 연대가 유구하고 고증이 실전되어 소목계통을 밝히지 못하여 그를 득성시조로 하고 그 후손 배현경을 중시조로 하여 면면상계 하였으며 본관은 조상의 세거지인 한지부가 경주로 개칭됨에 따라 경주라 하였다. 중시조 현경(시호 무열)은 담력이 과인하고 용맹과 지모가 웅위하여 궁예가 고구려 영토를 점검하고 태봉국을 세울 때 이를 도와 행오에 출발하여 기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궁예가 왕으로 즉위한지 불과..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3
염제신농씨의 13세손인 뢰는 중국 하남방산지방에 복거할 때 방씨란 성을 받았고 뢰의 134세손인 지는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로서 황제의 명에 의하여 669년(신라 문무왕9)에 동래하여 설총과 함께 육례 구경의 대지를 밝힌 동방유학의 한 사람이다. 그후 상주에 세거했기 때문에 상주(구관)란 본관을 썼고 그후 운이 온수(온양)군에 봉해짐에 따라 온양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시조 지로부터 운까지의 세계 연대 행적은 수난으로 인하여 문헌이 실전되어 방운을 기1세한 것이다. 방씨는 상주 신창 군위 방씨가 있었는데 모두 온양으로 합본되고 군위방씨가 혹간 있다. 31(浩호 淳순 處처) 32(東동 裁재 鎭진) 33(文문 容용 源원) 34(瓚찬 孝효 楨정) 35(赫혁 錫석 鍾종) 36(濟제 承승 圭규) 37(植식) 38(炳병..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2
방씨의 선세계는 중국 대군 출신으로 명나라 당왕 때의 포라는 사람이 있어TEk. 우리나라 방씨는 그 후손이 귀화한 것으로 보이며 관향은 광주, 파주, 해주를 비롯하여 11본이나 되지만 모두가 시조를 상고할 수 없으며 역사상 드러난 인물로는 기독교 사상 최초의 목사인 기창(基昌)(1851-1911)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황해도 안악 산천을 비롯하여 평남, 경남의 순으로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1
1930년 국세 조사 때 처음으로 나타난 성이다. 당시 경남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에 방원당의 1가구가 있었으나 房(방)씨의 오기가 아닌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0
방씨는 문헌에 20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남양 방씨와 수원 방씨를 제외한 나머지 18본에 대하여는 미상이며 수원 방씨는 방정유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그 선계에 대하여는 상고하지 못하였다. 南陽房氏(남양방씨) 시조(동래시조) 俊(준)의 선세계는 중국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방읍의 후로 봉해져 지명인방을 성으로 하였는데 그후 고구려의 진청으로 당나라 정관 17년에 8학사를 파견할 때 방후의 후손인 당나라 재상 현령의 2자 준이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남양에 정착세거하여 남양으로 관적을 갖게 되었다. 그후 세계가 실전 되었다가 고려조에 벽상 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계홍을 1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21(基기 萬만 應응 敎교 泰태 鳳봉) 22(繡수 旭욱 昌창 聖성 濬준) 23(斗두 相상 翼익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8
반씨는 본래 중국 상고 전욱의 후예로 전하며 초나라 때의 투반의 후손이 그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본관은 개성, 고성, 평해 등 3본이 전하고 있으나 그 내력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193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경북, 황해도 각 지방에 1∼2가구씩 약 25가구가 있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7
반씨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4째아들 계손이 번 땅에 봉해져 부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성씨라고 했으나 그 이하는 상고할 수 없다. 거제번씨의 시조 阜(부)(시호 문절)는 고려 때 사람으로 1265년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원제로부터 문무를 견비한 훌륭한 재능을 인정받고 신하로 삼고자 종용과 협박을 당했으나 끝내 굽히지 않았다. 원나라 세조는 그 절의에 감탄하여 그를 잉신으로 삼아 제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후 그는 충렬왕에게 그 인품과 공적을 인정받아 시중이 되어 이어 기성(거제의 고호)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관성을 거제 번씨라 명명함으로서 후손들은 거제를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는 1267년과 그 이듬해에 려몽득사로서 두 차례 일본에 다녀왔고, 그후 김방겸을 따라 삼별초를 토벌 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