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6
고대 중국 황제의 후예라 하며 노땅에 봉해져 노씨가 되었다 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1930년 국세조사때 개성 개풍군 일대의 22가구등 모두 4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본관은 개성 태원, 북청 대원 등이 있다. 開城路氏(개성노씨) 시조 노은경(路誾儆)은 원나라 한림학사로서 고려 공민왕때 노국대장 공주를 배종하여 래조개성에 정착하여 세거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개성이라 하였다. 15(聖성) 16(博박) 17(東동) 18(鎬호) 19(泳영)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5
노씨는 문헌에 137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11본만을 수록하고 나머지는 미고이다. 노씨성은 주나라 건국 공신 강태공의 후예가 제나라 노현에 봉해짐으로 연유하여 비롯되었고 우리나라 노씨의 도시조 노수(부: 익주자사 진순, 조부: 서주 자사 흥표)는 중국 범양 사람으로 755년(신라 효성왕 14) 안록산의 난을 피하여 아들 9형제를 데리고 동래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 9형제가 광산(해), 교하(오), 풍천(지), 장연(구), 안동(만), 안강(곤), 연일(증), 평양(판), 곡산(원)으로 각각 봉작된 바에 따라 본관을 삼고 각기 분관하였다. 그런데 이 9형제 중 광산 노씨가 큰집으로 알려져 있으나 교하, 풍천노씨도 각기 자기가 큰집이라고 보첩에 나타나 있어 다소 의견이 있는 것 같다. 谷山盧氏..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4
옛문헌에 보이지 않던 성으로 1930년 국세조사때 충남 서천과 황해도 수안군 등지에 모두 4가구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본관은 나주 단본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2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내원길의 고증에 따르면 내씨는 본원이 개성왕씨로서 고려 왕족이였는데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왕씨족은 가차없이 살해당하게 되었다. 그때 공민왕조의 재상이었던 왕씨(개성내씨 시조) 한사람도 생명을 보전키 위하여 망명하는 도중 임진강 나루터에서 건문포졸이 성이 뭐냐 묻는 말에 당황한 왕씨는 네? 하고 반문하자 포졸은 내씨로 성을 기재하여 비로소 乃(내)씨로 창성 되었다 하며 본관은 원래 왕씨 본관인 개성을 통용하여 마침내 개성 내씨가 되었다 한다. 한편 노일전쟁때 명성을 날렸던 일본 내목대장도 왕씨(즉 내씨)의 망명족이라고 하나 문헌상 고증은 미고이다. 개성내씨는 경기도 파주에 30호 서울에 20호 등 전국에 50호가 분포되어 있다한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1
시조의 이름은 알 수 없고 다만이라는 사실만 전하고 있다. 여러 문헌에 의하면 중국에서 귀화한 씨족임에 틀림없으며 일설에는 명나라의 낭초란 사람이 삼백여년전 인조때 황해도 웅진 부근에 배를 타고 건너왔다고 한다. 1930년 국세조사때 서울 경기도 예산 충주 등지에 40여호가 분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5:00
시조 및 본관의 유래는 에 의하면 제갈씨의 시조는 에 등장하는 제갈량(공명)의 아버지가 되는 제갈규라 하는데 그의 20대손 제갈공순이 신라흥덕왕때 신라에 귀화한 것이 제갈씨의 시초이며 그 뒤 고려 고종 때 이르러 제갈홍 제갈영의 형제(세계 상으로 33세)가 복성을 각각 한자씩 나누워 쓰기로 하여 형 홍은 제씨로 아우 영은 갈씨로 분종하였다. 갈씨는 주요 본관 청주, 양주 외에 양근, 양성, 충주, 청풍, 청산, 청안, 청당, 육창, 해남, 황원, 비안곡, 화원, 가조, 죽장, 평양, 분원, 하원, 대원, 서경 등 22본이 전하나 시조는 미상이다. 역사상 드러난 인물은 에 고구려 장수왕 때의 장군으로 갈로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오늘의 갈씨와 동일계 인지는 확실치 않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59
남궁씨는 원래 중국 주나라 문왕때 남궁자의 후예로서 고조선 시대에 남궁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세거하였으나 그후 계대는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991년(고려성종 10) 남궁원청(관직 평장사)이 대장군으로 여진족을 백두산 이북에까지 몰아낸 공으로 감물아(함열의 고호)백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함열로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청 이후의 세계가 또한 실전되어 계대를 상고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후손인 득희를 1세조로 계승하고 있다. 시조의 묘소는 충남 보령군 청라면에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57
나씨는 문헌에 46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금성 나씨와 나주나씨를 제외한 그 나머지 44본에 대하여서는 미고이다. 금성 나씨는 나총례를 시조로 하고 나주나씨는 나부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錦城羅氏(금성나씨) 금성나씨는 원래 중국 축융씨 후예인 성이였으나 춘추시(주평왕2)에 나국에 봉해짐으로써 나씨가 되었다. 그 후 주공이 한고조에게 공이있어 예장군에 봉해진 뒤 예장나씨가 되었다가 당태종때에 이르러 상서좌복사 나지강이 고구려를 정벌하자는 정의를 반대하고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발라현(나주)에 정착한 후 신라조에서 벼슬이 좌승상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그의 후손이 나주에 세거하다가 신라 효공왕때 나경이 나주사손으로 봉해지고 관을 나주로 하였으나 고증이 유실되어 소목계통을 밝히지 못하고 고려초에 삼한벽상..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56
김씨의 본관은 에 623본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서에는 112본만 수록하고 나머지 성씨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김씨는 이를 크게 나누어 가락국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수로왕계와 신라왕실의 박, 섭, 김 3성중의 하나인 김알지계로 볼 수 있는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락국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가락에는 본래 아도간, 여도간, 파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오천간, 신귀등 9간(촌상)이 있어 각 지방을 다스렸는데 서기 42년 9간들이 구지봉에 올라 신탁에 의하여 가락을 다스릴 군장을 얻고자 의식을 행하였더니 마침내 하늘에서 6개의 해만한 황금알을 담은 금합이 내려왔다. 이튿날 이 여섯 알이 동자로 화하여 그 중 먼저 나온 수로를 가락 (본가야)의 왕으로 삼고 나머지 다섯 동자도 각기 5..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52
기씨는 기자의 후예라고 전해지고 있다. 寄(기)씨와 동원인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분포는 경북 영일, 강원도 인제, 평남 덕천 등지에 각한 가구씩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