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8
시조 孫(손)(호:근사제)의 선세계는 회골인으로 설연하에 세거하면서 성을 설이라 하고 원나라에 귀화하여 대대로 벼슬을 지낸 가문으로 태전 극직의 8세손이다. 그는 학문이 깊고 문장에 뛰어난 시인으로 1358년(공민왕7) 홍건적의 난을 피해 망명 귀화하니 그를 부원후에 봉하고 식읍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 장수(시호 문정)가 경주로 사관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경주라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6(遇우) 17(興흥) 18(之지) 19(泓홍) 20(殷은) 21(漢한) 22(左좌) 23(德덕) 24(淳순) 25(錫석) 26(源원) 27(秉병) 28(煥환) 29(在재) 30(鎬호)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6
우리나라 선우씨의 성원은 기자가 기자조선 세우고 그의 장자 송이 2대 장혜왕으로 즉위 하면서 아우 중을 우산국에 봉하여 나라를 세우게 하였으므로 조선과 우산국에 있는 자손들이 조선의 「선」과 우산의 「우」 2자를 취하여 다같이 선우라고 성을 삼았고 본관을 태원이라고 함으로써 비롯 되었다. 그 뒤에 41대왕 애왕(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천하여 금산군(현익산)에 마한을 세웠는데 10대 계왕에 이르러 백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때 원왕에게 아들 3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량이 용강 오석산으로 들어가 황용국을 세우고, 왕으로 즉위하여 선우씨의 세계를 이어왔고, 하나는 청주한씨 하나는 행주기씨가 되었다. 량의 10세손 병에 이르러 나라를 고구려에 빼앗기고 서민으로 태원선우씨의 세계를 이어 왔으나 고증과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5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로 당시 서울 1가구 경흥에 1가구 도합 2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4
에 의하면 보성 선씨의 시조 선윤지(호: 퇴유당)는 중국 노나라 대부선백의 후손으로 명나라때 문연각 학사로서 1382년(우왕8)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귀화 전라도 안염사가 되어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우거하는 도이를 격퇴하고 민심을 안정 시켰으며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후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키고 보성에 은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보성으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그리고 동성동본으로 고려말에 예의판서 우문각 대제학 등을 지내고 조선개국 후에 보성 백이산 남록도촌방으로 은거한 선원지를 시조로 하는 또한 계통이 있으나 같은 혈손으로서 곤계 관계는 분명하지 않으나 양파사이에 합보를 하였다. 21(圭규 錫석 鎬호 泳영) 22(鍾종 泰태 永영 相상) 23(浩호 來래 柱주 炳병) 24(東동 容용 ..
시조 載興(재흥)의 선세계는 신라 4대 임금 석탈해니사금의 23세손이다. 석씨는 신라 56왕중 8왕(석탈해 벌휴왕, 나해왕, 조세왕, 첨해왕, 유례왕, 기임왕, 흘해왕)이 즉위 했으며 삼국사기에 석탈해의 탄생 및 명명신화가 전하고 있으나 이는 생략한다. 재흥은 고려조에 시랑을 지냈으며 후손들은 그를 시조(1세)로 하고 본관을 월성(경주의 고호)으로 하였다. 38(基기) 39(鎭진) 40(河하) 41(東동) 42(榮영) 43(圭규) 44(鎬호) 45(準준) 46(植식)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2
역대 문헌에는 보이지 않던 성씨로 1960년 국세조사 통계에 단1명이 경기도에 살고 있다.
석씨는 문헌에 85번으로 나타나 있으나 충주(홍주)석씨와 해주 석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미상이다. 충주(홍주)석씨는 고려 의종때 랑장으로서 두경승과 함께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상장군이 되고 이어 서북병마사를 지낸 석린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해주 석씨는 본래 중국의 동명 사람으로 명나라 목종 때 병부상서를 지낸 석성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忠州(洪州)石氏(충주(홍주)석씨) 석씨의 시조 隣(린)은 고려 의종 때 랑장으로서 두경승과 함께 조위총란을 평정한 공으로 상장군이 되었고 이어 서북병마사를 지냈으며 약성(충주의 고호)군에 봉해졌다. 그의 7세손 천을에 이르러 아들 형제가 있었는데 제1자 수명의 후손은 본관을 홍주라 하였고, 제2자 여명의 후손은 본관을 충주라 하여 각각 분적하였는데 동..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1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1930년 국세조사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성씨이다. 당시 대전과 김해에 각각 1가구씩 살고 있었으며 1960년 국세조사 때는 인구가 209명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나라 때 중국에도 서씨가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귀화한 성씨인 것 같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0
서씨는 문헌에 165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본서에 기록된 성씨는 11본에 불과하고 나머지 142본에 대해서는 미고이다. 그러나 모든 서씨는 이천서씨의 시조 서신일의 후손으로 짐작된다. 전설에 의하면 고대 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이 위만에게 쫓겨 지금의 이천땅 서아성에 자리잡은 것이 서씨의 시조라고 한다. 우리나라 서씨 가운데서 기자에 연원을 두고 있는 성은 서씨 청주 한씨 태원 선우씨 행주기씨 등이다. 서씨는 대종이 이천 서씨이지만 명벌로 빼어난 집안은 대구 서씨이다. 삼대 정승에 비롯하여 청송심씨 청풍김씨가 있을 따름으로 그중에서도 6대에 걸쳐 삼정승 삼대제학을 낸 집안은 대구서씨 뿐이다. 南陽徐氏(남양서씨) 시조 간은 8학사의 한 사람으로서 정관 연간에(627-647) 우리나라에 와 당성(남양의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49
시조 記(기)는 중국의 하남 사람으로서 원나라 순제의 시신으로서 중랑장을 지냈고, 노국공주를 호종하여 래조 고려 공민왕 때 안음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본관을 안음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