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6
용서는 중국 진한시대의 군 이름으로 지금의 감숙성 임조부에서 몽창부의 서쪽에 걸친 곳으로 본관 자체가 중국 지명이며 또 중국 주나라 양왕 때에 진나라에 비정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보아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임이 분명하다. 비씨의 관향은 용서 단본이며, 평남 강동, 황해도 곡산 충남 공주에 극소수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5
시조 부을나는 양을나 고을나와 함께 제주도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에서 용출한 삼신인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동쪽으로부터 떠 내려온 상자를 건저 세 미녀와 오곡의 씨앗과 망아지 송아지를 얻어 세 미녀를 베필로 삼고 제주 일도, 이도, 삼도 세 지역에 할거하여 목축과 농사를 영위 하였다. 그로부터 부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나 세계가 실전되어 원손 득시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제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6(宗종) 17(啓계) 18(彬빈) 19(載재) 20(錫석) 21(斗두)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4
봉씨는 문헌에 1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봉우를 시조로 한 하음봉씨와 시조 미고인 강화봉씨가 있을 뿐 그 외의 17본은 미상이다. 江華奉氏(강화봉씨) 시조는 미상이며 아마도 하음(강화지방)봉씨의 분파인 듯 하다. 이밖에도 광주 안산 등 18본이 있으나, 모두 시조를 상고할 수 없다. 봉씨는 주로 황해도 수안 해주 연백 등지에 집중해 있고 경기도 안성, 평택, 충남 보은 전북 고창 전남 장성 영광 나주 등지에 1천여 가구가 살고 있다. 河陰奉氏(하음봉씨) 시조 봉우는 고려 인종 때에 위위소랑, 정당문학, 좌복사로 공을 세워 하음백에 봉해졌다. 1107년(예종2) 한 노파가 강화의 하음면 연안에 석함이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건져내어보니 그 속에 범상치 않은 아기가 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아기를 왕에게 바..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3
시조는 알 수 없으며 본관은 경주 단본이다. 봉씨는 전국적으로 겨우 몇 가구가 살고 있을 뿐이며 본시는 奉(봉)씨였는데 민적법 시행때 오기된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32
시조 智謙(지겸)은 태봉의 마군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횡폭해지자 919년(고려 태조 천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재한 개국공신 대장군이다. 그 선조는 당나라 때의 학사로서 신라 말에 난을 피하여 우리 나라에 와서 면천(충남 당진군 순성면)에 정착하여 당시 서해안에 들끓던 해적들을 소탕하여 생활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면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당진군 순성면 양유리에 시조의 제단이 있으며 향사일은 음 10월 1일이다. 21(承승) 22(世세) 23(雨우) 24(淵연) 25(吉길) 26(廷정) 27(之지) 28(玉옥) 29(台태) 30(景경) 31(來래) 32(欽흠) 33(潤윤) 34(來래) 35(箕기) 36(圭규) 37(鎭진) 38(洙수 淳순) 39(權권 榮영) 40(然연 憲헌 熙희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8
변씨는 문헌에 67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邊安烈(변안열)을 시조로 한 원주 변씨와 변경을 시조한 장연변씨 그리고 변여을 시조로한 황주변씨 이외에는 미상이다. 또한 이상 3본의 인구수를 보면 원주 변씨가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原州邊氏(원주변씨) 시조 安烈(안열)은 송나라 말기에 고려에 기화하여 상장군으로 태천백에 봉해지고 황주변씨 시조가 된 여의 후손이다. 연대는 상고할 수 없으나 그의 조상이 심양으로 들어가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1351년(충정왕3) 수장으로 노국공주를 배종한 공으로 추충량절선위, 익찬보조공신벽상삼한삼중 대광문 하찬성 사겸판예의 사사영삼사동평장사로 원주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원주를 식읍으로 하사받고 원주에 정착세거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황주 변씨에서 분적 본관을 원주로..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7
에 의하면 범씨는 안주 단본으로 시조 영부의 선세계는 중국 하남 출신이다. 그는 우왕 때 문화안집사로 있었고, 현재 그 후손은 극소수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6
시조 승조는 원래 원나라의 예부사랑으로 노국공주를 배종하여 우리 나라에 왔다. 그의 아들 유수는 문하시랑으로 여진의 난에 참가하여 토평한 공으로 공훈 1등에 금성군으로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금성이라고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21(潤윤) 22(植식) 23(熙희) 24(奎규 均균) 25(鍾종 鎭진) 26(源원) 27(秉병) 28(烈열) 29(載재) 30(鎬호) 31(泰태)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5
시조 宇經(우경)은 중국 소주인으로 황제헌원의 16세손을병의 후손이다. 그는 780년 동래하여 계림자옥산하에 정착하면서 신라조에 사관하여 좌복사공대사도에 이르고 백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창직을 중조(1세)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중조의 증손 휘가 고려 때 대사마 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졌다는 설이 있고 또는 중조의 9세손 천장이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으로 수성백에 봉해지고 고려조에서 수원백에 봉해짐으로 수원으로 하였다는 양설이 있다. 이 밖의 염포, 부여, 대흥백씨는 모두 수원백씨의 분파이다. 시조의 묘소는 경북 월성군 안강읍 옥산동. 향사일은 양 5월 첫 일요일. (수원파) 16(榮영) 17(文문) 18(允윤) 19(..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4
배씨의 시원은 신라 개국의전(BC 57)에 6부촌장의 일인인 김산가리촌장 지타(태사공)가 다른 5부촌장과 함께 알천 양산암라정방림간에서 부득하여 수양한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왕으로 추재하고 개국 1동 원훈에 서훈 총재태사에 오르고 그후 32년(유리왕9) 김산가리촌을 한지부로 고치고 배씨로 사성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나 연대가 유구하고 고증이 실전되어 소목계통을 밝히지 못하여 그를 득성시조로 하고 그 후손 배현경을 중시조로 하여 면면상계 하였으며 본관은 조상의 세거지인 한지부가 경주로 개칭됨에 따라 경주라 하였다. 중시조 현경(시호 무열)은 담력이 과인하고 용맹과 지모가 웅위하여 궁예가 고구려 영토를 점검하고 태봉국을 세울 때 이를 도와 행오에 출발하여 기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궁예가 왕으로 즉위한지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