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00
신씨는 문헌에 155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고령, 아주, 평산 3본을 제외한 152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신씨 가운데 평산신씨는 전체 신씨의 70%이상을 차지하고 고령신씨가 20%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신씨는 이조때 대표적인 명벌의 하나로서 고령신씨는 이조 전반기에 평산신씨는 이조 후반기에 크게 세를 떨쳤다. 그리고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은 고려 왕건태조의 익재공신으로 공산동수에서 태조의 위급을 구출코자 대신 전사, 죽음을 애통히 여긴 태조는 달성군 공산면에 지묘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했다고 한다. 高靈申氏(고령신씨) 시조 성용(成用)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검교 군기감을 역임했다. 성용의 선계는 신라의 공족으로 누대 고령에 세거하면서 호장을 지내왔으므로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고령으로 하여 세계를..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0:57
시조 修(수)의 선세계는 중국개봉부인이다. 그는 고려 문종때 래조하여 벼슬은 수사도, 좌복사, 참지정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거창에 세거하였다. 그런데 아들 안지는 지수주사가 되어 수원신씨라고 한 기사가 있으나 그후 거창에 세거함으로써 그의 후손들은 본관을 거창이라고 하고 수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26(輔보) 27(九구) 28(炳병) 29(宗종) 30(성) 31(範범) 32(鏞용) 33(宰재) 34(重중) 35(揆규) 36(澤택) 37(相상) 38(煥환) 39(基기) 40(鎬호) 41(泳영) 42(根근) 43(然연) 44(圭규) 45(鉉현) 46(源원) 47(東동) 48(榮영) 49(載재)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0:54
절강시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춘추시대의 시백으로부터 시작되어 그후 중국의 명벌로 손꼽혀 왔다. 우리나라에 귀화한 것은 1592년(선조 25)의 일로 명나라 무장으로서 임진왜란 때 행영중군이 되어 원군으로 왔던 시문용(호:명초)이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명나라 군사가 철수할 때 병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성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손들은 문용을 중조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으며 원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문용은 무예에 뛰어나고 문장에도 능했고, 1741년(영조17) 병조참의 훌련도정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북 성주 남흑수방 칠령 흑방동좌이다. 9(錫석) 10(潤윤) 11(植식) 12(炳병) 13(奎규 基기 埈준) 14(鎭진 鍾종) 15(淵연)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0:51
시씨는 중국 고대의 고산씨의 후예라 하나 언제 우리나라에 와서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않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사씨는 고려 현종때 흥화진두를 지낸 식운이다. 1930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정읍, 임실 등 전북에 94가구가 살고 기타 지역에 10여 가구가 되어있다. 현재도 정읍 태인 등지에 집단부락을 형성해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태인, 금화 2본이며 농향을 본관으로 하는 시씨가 있으나 이는 태인의 지방명임을 생각하면 한 분파일 것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13
에 따르면 시조는 명승이다. 그의 선대는 중국의 황족이었으며 고려 공민왕때 그의 어머니와 더불어 망명 귀화했다. 그는 망국왕족으로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명자를 버리고 승자로 개성하였다하며 자손에게 유언하여 벼슬길에 일체 나가지 않게 했다. 그의 어머니 옥경화는 우리나라 전래의 신라예복(원삼 족두리)을 보급 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고종때 호조참판에 추증된 승봉운이 있다. 승씨와 명씨는 동근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통혼을 않는다고 한다. 주요 본관은 창평과 남원이며 분포는 나주, 화순, 서흥, 김천, 창원, 김해 등지에 약 80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12
1930년 국세조사 때 평남 령원군 2가구 함북 경성군에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11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1930년 국세조사때 각지에 8가구가 분포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당시의 거주지를 보면 순천 5, 광양 1, 부안 1, 연기 1가구 등이다. 본관은 파주와 임천 2본이다.
순씨는 상당히 연원이 오랜 성씨로 일직(안동)손씨의 처음 성도 순씨였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일직손씨와 순씨가 어떤 연관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가 없다. 순씨는 남한에만 분포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1930년 국세조사때 부여 서천 등지에 40여가구, 전북에 12가구 등이 분포해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본관은 임천 창원 연곡 등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10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으로 보인 성씨로 익산군에 1가구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09
1930년 국세조사 때는 나타나지 않은 성으로 1960년 국세조사 때 40여명이 서울 강원도 등지에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