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3
염제신농씨의 13세손인 뢰는 중국 하남방산지방에 복거할 때 방씨란 성을 받았고 뢰의 134세손인 지는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로서 황제의 명에 의하여 669년(신라 문무왕9)에 동래하여 설총과 함께 육례 구경의 대지를 밝힌 동방유학의 한 사람이다. 그후 상주에 세거했기 때문에 상주(구관)란 본관을 썼고 그후 운이 온수(온양)군에 봉해짐에 따라 온양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시조 지로부터 운까지의 세계 연대 행적은 수난으로 인하여 문헌이 실전되어 방운을 기1세한 것이다. 방씨는 상주 신창 군위 방씨가 있었는데 모두 온양으로 합본되고 군위방씨가 혹간 있다. 31(浩호 淳순 處처) 32(東동 裁재 鎭진) 33(文문 容용 源원) 34(瓚찬 孝효 楨정) 35(赫혁 錫석 鍾종) 36(濟제 承승 圭규) 37(植식) 38(炳병..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2
방씨의 선세계는 중국 대군 출신으로 명나라 당왕 때의 포라는 사람이 있어TEk. 우리나라 방씨는 그 후손이 귀화한 것으로 보이며 관향은 광주, 파주, 해주를 비롯하여 11본이나 되지만 모두가 시조를 상고할 수 없으며 역사상 드러난 인물로는 기독교 사상 최초의 목사인 기창(基昌)(1851-1911)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황해도 안악 산천을 비롯하여 평남, 경남의 순으로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1
1930년 국세 조사 때 처음으로 나타난 성이다. 당시 경남 밀양군 초동면 봉황리에 방원당의 1가구가 있었으나 房(방)씨의 오기가 아닌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20
방씨는 문헌에 20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남양 방씨와 수원 방씨를 제외한 나머지 18본에 대하여는 미상이며 수원 방씨는 방정유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그 선계에 대하여는 상고하지 못하였다. 南陽房氏(남양방씨) 시조(동래시조) 俊(준)의 선세계는 중국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방읍의 후로 봉해져 지명인방을 성으로 하였는데 그후 고구려의 진청으로 당나라 정관 17년에 8학사를 파견할 때 방후의 후손인 당나라 재상 현령의 2자 준이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남양에 정착세거하여 남양으로 관적을 갖게 되었다. 그후 세계가 실전 되었다가 고려조에 벽상 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계홍을 1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21(基기 萬만 應응 敎교 泰태 鳳봉) 22(繡수 旭욱 昌창 聖성 濬준) 23(斗두 相상 翼익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8
반씨는 본래 중국 상고 전욱의 후예로 전하며 초나라 때의 투반의 후손이 그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본관은 개성, 고성, 평해 등 3본이 전하고 있으나 그 내력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193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경북, 황해도 각 지방에 1∼2가구씩 약 25가구가 있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7
반씨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4째아들 계손이 번 땅에 봉해져 부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성씨라고 했으나 그 이하는 상고할 수 없다. 거제번씨의 시조 阜(부)(시호 문절)는 고려 때 사람으로 1265년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원제로부터 문무를 견비한 훌륭한 재능을 인정받고 신하로 삼고자 종용과 협박을 당했으나 끝내 굽히지 않았다. 원나라 세조는 그 절의에 감탄하여 그를 잉신으로 삼아 제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후 그는 충렬왕에게 그 인품과 공적을 인정받아 시중이 되어 이어 기성(거제의 고호)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관성을 거제 번씨라 명명함으로서 후손들은 거제를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는 1267년과 그 이듬해에 려몽득사로서 두 차례 일본에 다녀왔고, 그후 김방겸을 따라 삼별초를 토벌 진도..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6
박씨는 문헌에 314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강릉박씨를 비롯하여 44본을 제외한 270본에 대해서는 미고이다. 박씨는 모두 신라 박혁거세왕을 시조로 한 혈손이며 가장 순수한 성씨이다. 박혁거세의 탄생에 대하여는 나 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신라가 이룩되기 전에 원시부족사회인 사노육촌 촌장이 모여 나라를 다스릴 군장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하늘에 제례를 올리고 있을 때 홀연히 멀리 양산아래 라정 수풀 사이에 오색이 영롱한 서기가 뻗치는 용마 한필이 큰 소리를 지르고 한 선인이 서기를 향하여 끓어 절하는 모습이 육촌장들에게 보였다. 고허촌장 소벌도리공이 친히 가보니 알의 형상 같기도 하고 박의 형상 같기도 한 포가 있어 신기하게 여겨 포를 헤쳐보니 그 속에서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때는 기원전 69년의..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5
민씨는 본래 공자의 제자 가운데 10철중일인인 자건의 후예로서 그 후손이 고려 때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려흥(여주의 고호)에 정착세거하였다. 시조는 고려에서 상의 붕어를 지낸 稱道(칭도)이다. 여흥 민씨는 단본으로 고려 충숙왕조에서 수정승을 지낸 학자 지를 시조로 하는 문인공파와 같은 시기에 대제학을 지낸 적을 시조로 하는 문순공파로 나뉘어진다. 민씨는 역사상 세차례에 걸쳐 크게 나타났는데 첫 번째는 고려말 이조 초기 두 번째는 이조 숙종 영조에 이르는 100여년간 세 번째는 한말 고종조였다. 24(百백) 25(赫혁 顯현) 26(致치) 27(鎬호 鏞용) 28(泳영) 29(植식) 30(丙병) 31(基기 圭규 培배) 32(庚경) 33(泓홍 源원) 34(東동) 35(熙희) 36(馨형 在재) 37(錫석)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4
재령미씨의 세보에 따르면 1771년(영조 47)에 창씨하였고 본관의 유래는 미상이다. 시조 영성은 연대는 미상이나 백호장을 지내고 함북 종성군 행영의 도총사로 국경경비에 참여하고 그후 경성에서 세거하였다 한다. 문헌이 실전되어 계통을 밝힐 수 없고 세손 병제부터 계대하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13
문씨는 인천, 송림, 인동 등 여러 본관으로 전하고 있으나 1930년 국세조사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천 문씨의 시조는 감문랑장을 지낸 필대이며 그의 후손이 고려에서 시어사를 지낸 사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