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14
시조는 고려때의 명장 지채문이다. 그는 1010년(현종1) 게단군이 침입했을 때 많은 공을 세웠으며 또 왕의 피난길을 호종하여 신변의 위기를 막았다. 난이 평정된 후 그 공으로 전토 30곁을 하사받았으며 동 7년 무관으로서 우상시를 겸했고 뒤에 상장군복사로 1등공신에 추록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봉주로 하였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13
준씨는 청주준씨 단본이며 936년 왕건이 후백제 신검과 결전할 때 우익장군이었던 준량과 제4대 광종때 대상에 오른 홍 제20대 신종때의 존비 등이 나타났는데 오늘날의 준씨와의 관련은 미상이다. 분포는 1930년 국세조사 자료에 의하면 충남 서천군 종천면 석촌리에 1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10
신안주씨는 원래 중국 전욱씨의 후예인 조협을 주무왕이 주국(현산동성 제남부)에 봉하였던 바 그후 초국에 병합됨에 따라 「朱+邑」자의 「邑」변을 떼고 「朱」로 성을 삼았다. 시조의 유래를 살펴보면 전욱씨의 후예인 주희(주자)의 증손 잠(호 청계)이 동래하여 우리나라 신안주씨의 시조가 되었고 본관에 있어서는 시조가 동래한 후 후손들이 700년간에 걸쳐 각지에 산거하는 동안 그 세거지를 본관으로 삼아 릉주 나주 전주 함흥 등 많은 본관을 써오다가 1902년(고종 39) 문의에 의해 의정부찬정 석晩(만)을 대표로 상소를 하여 조칙을 받음으로부터 잠의 후손들은 본관을 모두 신안으로 통합하게 되었다. 31(寧녕 炯형) 32(中중 奎규) 33(宰재 鍾종) 34(暾돈 河하) 35(東동 尤우) 36(경 煥환) 37(基기..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09
시조 형소의 선세계는 중국 노나라때의 태사좌구명의 후손이다. 형소는 원나라 천관시랑으로 고려에 래조하여 침라(제주) 목마장감목관이 되면서부터 그곳에 정착세거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제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3(光광) 14(鎭진) 15(永영) 16(澄징) 17(彦언)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08
종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송나라 환공이 아들을 종에 대하여 이루어진 성으로 전하는데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다. 본관은 하음, 풍덕, 통진, 천안, 영암, 두원, 정의 등이 전하나 대종은 하음종씨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07
종씨는 중국 주나라 대부 종백의 후예로 전한다. 종씨는 주요 분관 임진, 통진, 이외에 모압니파, 인의, 황원 등이 있고 1930년 국세조사때 황해도 서흥곡산 등지에 3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06
시조 계용은 신라 진평왕의 여서이다. 그의 모친은 창녕현 고암촌에서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청용질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자 학사가 크게 염려하던중 어느 신승의 말에 따라 화왕산 용담에 가서 목욕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신기하게 병은 완쾌되고 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꿈에 금관을 쓰고 옥대를 두른 한 남자가 나타나 웃으며 말하기를 이 아이의 아버지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다 이 아이를 잘길러라 크면 공후가 될 것이며 자손도 번영할 것이다라고 하며 떠났다. 그후 십삭이 지나서 진평왕 48년에 생남하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曺」자가 붉게 씌어져 있었다. 이것을 본 학사는 크게 이상히 여겨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도 신기하게 여기며 성은 조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03
조씨는 문헌에 210본으로 나타나 있다. 조씨는 이조에 명성을 떨쳤으며 명문벌족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풍양, 한양, 양주, 평양, 임천, 백천, 함안, 옥천, 횡성조씨 등이 대본이다. 조씨는 동성동본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동계혈족이 아닌 이본일지라도 통혼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조씨의 210본 중 조맹(고려조 문하시중 평장사)을 시조로 하는 풍양조씨를 비롯하여 15성씨를 제외한 나머지 195성씨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金堤趙氏(김제조씨) 시조 연벽의 선계는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연원과 동래한 시기에 대하여는 상고할 수가 없다. 다만 황제의 8세손에 조숙이 있었다는 것 주나라 목왕 때 조부가 서언왕을 친 공으로 조성에 봉해져 조씨성이 비롯되었다는 것, 또 송나라 태조 조광윤이 있..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01
칠원제씨는 중국 제갈무후량의 증손 제갈충이 부형이 순절하자 13세에 신라로 들어왔는데 그때가 미추왕 시대이다. 대대로 지리산밑에서 경전독서하고 살았는데 고려 현종조에 이르러 시조 제갈영의 34세손 제갈홍과 제갈형 형제가 탄생하였다. 현종은 형제를 불러 형 제갈홍은 제씨로 남양군에 봉하고 제 제갈형은 갈씨로 량야군에 봉하여 제씨와 갈씨가 분성되었다. 그리고 고려 충선왕 때 제갈영의 42세손(제홍의 8세손)인 제문유가 왕의 초청을 받아 벽상공신 1등평장사로 옥대를 하사받고 구산(칠원)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본관을 칠원으로 하게 되었다. 중시조 문유의 자는 공화 호는 삼성이며 묘소는 경남 함안군 칠원면 우두산 자좌이다. 8(弘홍) 9(汝여) 10(命명) 11(夏하) 12(朝조) 13(國국) 14(寬관)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2:59
시조 제갈규는 충갈랴의 아버지이다. 그의 5세손 충이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지리산 아래서 세거하였고 후손들이 중국 원향 남양을 본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규의 원손 공순이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토착하였다는 설도 있고 또 그후 고려 현종 때 복성을 각각 제씨와 갈씨로 분종했다가 구한말에 성씨 환원 운동이 일어나자 일부가 제갈씨로 복원 하였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