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조씨(曺氏(昌寧))


 시조 계용은 신라 진평왕의 여서이다. 그의 모친은 창녕현 고암촌에서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청용질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자 학사가 크게 염려하던중 어느 신승의 말에 따라 화왕산 용담에 가서 목욕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신기하게 병은 완쾌되고 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꿈에 금관을 쓰고 옥대를 두른 한 남자가 나타나 웃으며 말하기를 이 아이의 아버지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다 이 아이를 잘길러라 크면 공후가 될 것이며 자손도 번영할 것이다라고 하며 떠났다.
 그후 십삭이 지나서 진평왕 48년에 생남하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曺」자가 붉게 씌어져 있었다. 이것을 본 학사는 크게 이상히 여겨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자 왕도 신기하게 여기며 성은 조 이름은 계용 자는 린경이라 특사하고 뒤에 부마를 삼움으로써 창성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이 보국대장군상주국대도독총지휘제군사금자광록대부태자태사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그의 후손들은 계용을 시조로 하고 창녕은 그의 세거지이기 때문에 본관을 삼게 된 것이다. 시조의 묘소는 경북 안강읍 노당이리에 있다.

<행 렬 자>

40(承승) 41(秉병) 42(煥환 燮섭 烈열) 43(圭규 喜희 基기) 44(鉉현 鎬호 鍾종) 45(永영 洙수 海해) 46(根근 植식 穆목) 47(容용 炯형 然연) 48(載재 坤곤 塤훈) 49(鎰일 鍵건 鏞용) 50(泰태 淳순 淵연) 51(東동 相상 榮영) 52(燮섭 烈열 杰걸) 53(均균 重중 垣원) 54(鎔용 鎭진 錫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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