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2:19
시조 洪悅(홍열)은 신라 때 삼한벽상공신삼중문하시랑태자태사를 거쳐 보문각대제학에 이르렀고 시호는 정양이다. 그의 선조가 당나라 학사로서 래조하여 덕양(행주)에 정착 세거하였으므로 홍열을 기1세하고 본관을 행주라 하였다. 34(燮섭) 35(成성) 36(杓표) 37(熙희) 38(基기) 39(鍾종) 40(洙수)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2:18
1930년 국세조사때 평남 강서군 쌍용면 기리에 1가구가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2:17
윤씨는 문헌상에 14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10본을 제외한 나머지 139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윤씨는 이조의 대표적인 명벌로서 손꼽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파평윤씨는 고려 때부터 세족으로서 이조 개국 이후에는 왕비와 훈신 학자를 배출하여 거의 이조 전기에 걸쳐 세력을 크게 떨쳤다. 파평윤씨 대종회측의 주장에 의하면 해평, 무송, 칠원, 해남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모두 파평윤씨에서 분적되었다고 하며 남원, 함안, 야성, 신령 등은 이미 파평으로 환보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송 윤씨는 윤양비를 시조로 하고 양주윤씨는 윤덕방, 영천윤씨는 윤공생, 예천윤씨는 유충, 칠원윤씨는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자태사를 지낸 윤시영 해남윤씨는 윤존부, 해평윤씨는 고려 원종 때 수사공상서, 좌복사, 판공부사를 지낸 윤군정을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2:03
시조 普(보)는 중국절강소흥부 사람으로 927년(경순왕1)에 흥은설 정간과 함께 당나라의 선교사로 신라에 들어와 문학을 선교하였다. 그중 육보가 문장이 뛰어나고 선교의 공이 현저하였으므로 경순왕이 그를 총애하여 부마로 삼고 관성(옥천의 고호)군에 봉했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에 육씨의 연원이 이루웠으나 고증과 문헌이 실전돼 세계를 상골할 수 없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고려 때 주부를 지낸 인단을 중시조로 하여 기1세하고 옥천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25(根근) 26(心심) 27(君군) 28(錦금) 29(治치) 30(保보) 31(久구) 32(生생) 33(銘명) 34(知지) 35(仁인)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2:00
兪氏(유씨) 유씨는 문헌에 97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8본을 제외한 나머지 89본은 미고이다. 그러나 유씨는 모두 신라때 아손을 지낸 유삼재를 비조로 한 동원에서 분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기계 유시가 대종으로 유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이조에서 상신3명을 배출했는데 기계유씨의 많은 인물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유응부는 장군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康津兪氏(강진유씨) 시조 적은 강진에 토착한 사족으로 고려말에 감문위상장군공조판서를 역임했다. 그래서 강진을 본관으로 하였다. 高靈兪氏(고령유씨) 시조 軫(진)의 선세계는 고려조에 통례문지후를 역임한 보이다. 계대가 실전되어 현감을 역임한 그를 시조로하여 계대하고 본관을 고령으로 하였다. 金山兪氏(금산유씨) 시조 및 득관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7
300년대 한나라 말기와 진나라 초기에 유순유가 중국의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산천이 수려함을 보고 머물러 살면서 유씨의 연원을 이루었고, 혈통을 연면상계하여 왔다. 그러나 세원하고 고증이 없어 세계를 상고할 수 없고 그의 후예 검필(시호:충절)이 황해도 평주(평산의 고호)사람으로 고려 개국 초기에 정서대장군, 정남대장군, 도총대장군 등을 역임하면서 견훤의 후백제를 치고 통합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통합삼한익찬공신으로 태사에 추증되고 식읍을 하사 받았으므로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평산이라 하여 세계를 계승하였다. 그후 5세손 록숭이 문종때 은청광록대부로 숙종때 태자소보삼지정사, 정승 등을 역임하고 무송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무송에 세거하면서 록숭을 1세조로 하고 평산유씨에서 분적 본관을 무송으로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6
시조 경은 원래 당나라의 관서 홍농 출신으로 신라 선덕여왕이 당나라에 도예지사를 청했을 때 당나라 태종이 보내 준 8학자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신라에 들어와 벼슬이 아랑상서 시중에 이르렀으며 회주(장흥의 고호)군에 봉해짐으로써 장흥에 세거한 그의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신라말에 대각관시중을 지낸 창주를 중시조로 하여 기1세하고 있다. 31(啓계 祖조) 32(光광 良양) 33(火화 喆철) 34(聖성 鍾종) 35(復복 源원) 36(禎정 金김) 37(泰태 坤곤) 38(賢현 鈞균) 39(洛락 山산) 40(必필 泳영) 41(基기 奎규) 42(炳병 琦기) 43(永영 淳순) 44(柄병 昌창) 45(水수 浩호) 46(普보 秉병) 47(文문 烈열) 48(吉길 車차) 49(寅인..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5
위씨는 본래 중국의 팽씨의 후예로서 당나라때에 대단한 성세를 보인 성씨이다. 당의 제4대 중종 황제의 황후를 비롯하여 문장가 정치가들을 무수히 배출한바 있다. 시조 수여는 960년(고려광종11) 중원에서 래조하여 사선관이 되었고 7대 목종 때는 문하시랑 평장사가 되었으며 8대 현종 2년에 노령으로 치사코자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고 오히려 궤장을 하사받았다. 익년 문화시중 상주국 강화현 개국백을 제수받고 강화를 식읍으로 하사하니 이로 인해 강화를 본관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는 현종3년 4월에 죽었으며 시호를 안공이라 하였고 내사령에 추증되었다. 향사일은 10월9일로 묘소는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그러나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조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위씨는 단일본이다. 13(昌창) 14(棟..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4
주나라 성왕의 근친에 원훤이 있었는데 그의 본성은 희씨였으나 성왕이 원으로 사성하고 위나라 대부를 봉하니 이로써 중국에서의 원성이 비롯된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진한에서 신라로 상계 입상한 원훈 원훤의 두 원성이 삼국사기에 로현되었으나 원훤과 관련이 있는지는 고증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원훤은 거금 약 3000년전 사람이며 원훈 원훤은 약 2000년전 사람으로 그들이 동래한 원훤의 후손일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뒤로 당나라 태종 때에 8학사 중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온 원경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가 우리나라 원씨의 도시조인 듯 하다. 그런데 원씨계보 중에서 경을 시조로 하는 옹암 운곡계는 계대가 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계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씨는 관향이 원주 단본으로 그중..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3
조선씨족계보에 의하면 원씨는 중국의 성씨로서 진나라 공자 원도수의 후손이다. 원래는 원씨였는데 차를 떼어버리고 원으로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씨는 비옥(비안의 별호) 단본으로 그 시조는 뢰보이다. 그러나 선조의 선계나 사적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198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충남 아산에 17가구를 비롯하여 전국에 21가구가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