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朴氏)


박씨는 문헌에 314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강릉박씨를 비롯하여 44본을 제외한 270본에 대해서는 미고이다. 박씨는 모두 신라 박혁거세왕을 시조로 한 혈손이며 가장 순수한 성씨이다. 박혁거세의 탄생에 대하여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신라가 이룩되기 전에 원시부족사회인 사노육촌 촌장이 모여 나라를 다스릴 군장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하늘에 제례를 올리고 있을 때 홀연히 멀리 양산아래 라정 수풀 사이에 오색이 영롱한 서기가 뻗치는 용마 한필이 큰 소리를 지르고 한 선인이 서기를 향하여 끓어 절하는 모습이 육촌장들에게 보였다. 고허촌장 소벌도리공이 친히 가보니 알의 형상 같기도 하고 박의 형상 같기도 한 포가 있어 신기하게 여겨 포를 헤쳐보니 그 속에서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때는 기원전 69년의 일이다. 뒷날 기원전 57년에 그를왕으로 추대하여 모셨다. 왕호는 거서우이라 하였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했다. 그리고 국호를 신라라 고친 것은 신라 지증왕 때라 한다. 진한 사람들의 말에 박을 朴(박)이라 부르고 고로 박에서 나왔다하여 박으로 성을 삼고 혁연히 당세에 살아 있다는 뜻에서 혁거세라 하였다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설이 있다. 하루는 혁거세의 꿈에 신인이 와서 김척을 전해 주면서 이 자로서 금구를 바로 잡게 하라고 하였다. 혁거세는 꿈을 깨어보니 완연히 김척이 수중에 있었다. 그 뒤 혁거세가 병자들을 김척으로 자질하면 죽은 자는 살아나니 모든 백성들은 그의 신덕을 자자하게 칭송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중국에서 김척의 신령함을 듣고 김척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지 않고 국도 서편 30리 밖 조산속에 비밀히 감춰 두었는데 지금의 금척촌이 곧 그곳이라 한다. 또한 혁거세의 비 알영은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등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전설로서 접어둘 일이라 하겠다.

  박씨의 선원은 혁거세왕이 초대왕이 되었고 2대 남해왕은 혁거세왕의 적자이며 3대 유리왕은 남해왕의 적자이고 4대왕 석타래왕 5대 파사왕은 유리왕의 둘째아들이며 6대 지마왕은 파사왕의 적자이고 7대 일성왕은 유리왕의 적자이며 8대 아달라왕은 일성왕의 적자이었으며 53대 신덕왕은 아달라왕의 후손으로 혁거세왕의 28세손이고 54대 경명왕은 신덕왕의 적자이며 55대 경애왕은 신덕왕의 2째 아들로서 박씨는 신라 박, 석, 김 세성 중 초대왕으로부터 55대 경애왕까지 모두 10명이 왕위에 올랐다.

 

江陵朴氏(강릉박씨)

 

시조(1세) 순 (시호 문충)은 파사왕의 14세손 유의 18세손으로 명종4년(1174)과 거에 급제 보문각시어를 거쳐 남경유수로 병부상서가 되어 석인의 모반을 제거한 공으로 보정정국공신이 되어 정당문학 검교태부가 되고 좌복사중서시랑평장사를 제수 받고 계림군에 봉해졌으나 관직을 버리고 강릉에 내려가서 야인으로 일생을 마치니 그의 후손들이 강릉에 정착세거하면서 본관을 강릉이라 하였다. 묘소는 강릉 용수산 서강경좌에 있다.

 

<행 렬 자>

24(東동) 25(容용) 26(均균 奎규) 27(鍾종) 28(澈철) 29(相상) 30(烈열) 31(敎교) 32(善선) 33(濟제) 34(極극) 35(炳병) 36(重중) 37(銖수) 38(浩호) 39(根근) 40(熙희) 41(裁재) 42(錫석) 43(泳영) 44(柱주)

 

高靈朴氏(고령박씨)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54대)의 제2자 고양대군(박언성)을 시조로 하고 본관은 본래 고양과 영천 두 지명을 합쳐 고령이라 하게 되었다. 고령 박씨는 고양 대군의 후손에 섬(사인공파), 환(부창정공파), 연(주부공파)을 각각 중조로 하는 세파가 있다.

 

<행 렬 자>

26(履이 羽우 奎규) 27(永영 覃담 賢현) 28(彬빈 大대 英영) 29(熙희 仁인 河하) 30(在재 煥환 仁인) 31(鏞용 培배 烈열) 32(浩호 遇우 在재) 33(九구 胤윤 欽흠) 34(炳병 南남) 35(河하 來래) 36(成성 載재) 37(起기 弘홍) 38(慶경 康강) 39(新신 宰재) 40(重중 秉병)

 

固城朴氏(고성박씨)

 

시조 서(호: 죽계. 시호: 충정)는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8대군 중의 제사자인 죽성대군언립의 11세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구주병마사 겸 문하평장사로 1231년(고종18) 몽고병이 침입할 때 구주싸움에서 공을 세워 철성(고성의 고호)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고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2(林임 茂무) 23(尙상) 24(基기) 25(鎭진) 26(洙수) 27(相상) 28(煜욱 煥환) 29(圭규 在재) 30(錫석 鎬호) 31(洪홍 海해) 32(根근) 33(炳병)

 

廣州朴氏(광주박씨)

 

시조 명훈은 고려조에서 전서를 역임하였고 그 후손들이 광주에 토착 세거함으로써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였다.

 

君威朴氏(군위박씨)

 

시조 헌은 신라 경명왕의 3자 속함대군 언신의 15세손으로 조선 이태조를 도와 개국원종 공신으로서 가선대부 공조전서가 되었을 때 관향을 군위로 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군위로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9(夏하) 20(在재) 21(鍾종 鏞용) 22(泳영 源원) 23(植식 根근) 24(性성 思사) 25(均균 吉길) 26(商상 鍵건) 27(淳순) 28(東동) 29(熙희) 30(喆철) 31(聲성) 32(承승) 33(模모) 34(燮섭)

 

龜山朴氏(구산박씨)

 

시조 천의 자는 석보로서 벼슬이 고려말에 정승에 이르렀으며 훈공이 있어 구산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본관을 구산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7(在재) 18(祖조) 19(泰태) 20(植식) 21(晩만) 22(王왕)

 

羅州朴氏(나주박씨)

 

시조 병묵(시호 충무)은 고려조에 평장사를 지냈으며 나주에 토착한 사족으로 그의 선세계는 실전되어 상고할 수가 없다. 그리고 조선왕조 때 나주 목사를 역임하고 좌정승에 추증된 취생을 증시조로 하는일문(범 박씨세보 참조)이 있으나 상하계대가 미상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병묵을 시조로 계세를 계승하고 관향을 나주로 하고 있다.

 

<행 렬 자>

15(敬경) 16(淳순) 17(根근) 18(成성)

 

魯城朴氏(노성박씨)

 

시조 연의 선세계는 실전되어 알 수 없으나 그는 조선왕조개국초에 감찰을 지냈다.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으며 본관을 노성으로 하였다.

 

<행 렬 자>

14(翼익) 15(升승) 16(형) 17(述술) 18(炳병)

 

沔川朴氏(면천박씨)

 

시조 득의(대승)는 파사왕의 24세손으로 아들 술희가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를 친 공이 커서 좌명공신으로 면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면천으로 하였다.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주를 중조(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9(東동) 30(愚우) 31(培배) 32(鍾종) 33(泰태) 34(根근) 35(會회) 36(喆철) 37(鎭진) 38(源원) 39(植식) 40(炯형) 41(奎규) 42(敏민) 43(洙수) 44(仁인) 45(煥환) 46(信신)

 

務安朴氏(무안박씨)

 

무안 박씨의 시조 진승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8대군중 제 6자인 완산 대군 언화의 9세손이다. 그는 벼슬이 국자제주에 이르고 공이 있어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정착하면서 본관을 무안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0(載재 廷정) 21(聖성 賢현) 22(仁인 鉉현) 23(敏민 朱주) 24(容용 楨정) 25(奎규 燮섭) 26(鎭진) 27(淳순) 28(植식) 29(燮섭 炯형) 30(在재)

 

文義朴氏(문의박씨)

 

시조 의중(호: 정제)은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아들 8대군 중 장자인 밀성대군 언침의 17세손이다. 그는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대사성 직제학을 지내고 1388년(우왕14) 명나라에 들어가 철령위의 철폐를 교섭하고 돌아와 창왕 때 공신이 되었다. 후에 예문관제학겸 대사성을 지내고 1392년(태조1) 조준 정도전 등과 함께 <고려사>를 수선하고 검교참찬의정부사가 되었다. 그의 아들 연이 공민왕 때 정사공신으로 문의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문의를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文州朴氏(문주박씨)

 

문주는 문천의 별칭으로 시조는 인제대군의 후손인 한보이다. 그의 아들 광은 이성계의 조부 도조의 장인으로 안변부원군이나 그 세계와 그 외의 사실은 상고할 수 없다.

 

密陽朴氏(밀양박씨)

 

모든 박씨의 유일조인 신라시조왕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9아들이 각각 분파할 때 제1자 언침이 밀성(밀양의 고호)대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언침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경명왕계의 8대군파와 국상공파 가운데 제일 종가인 밀성대군파의 밀양박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박씨 선원세보에 의하면 밀양박씨에서 10여개 본관으로 분적되었으니 언침의 10세손 항(영암박씨) 12세손 원의(태안박씨) 13세손 진문(진원박씨) 14세손 응주(번남박씨) 15세손 종우(운성박씨) 15세손 화규(진주박씨) 15세손 천(구산박씨) 15세손 취생(나주박씨) 16세손 영(창원박씨) 17세손 의중(문의박씨) 20세손 지석(나주박씨)을 1세조로 하여 각각 분적하였다. 그리고 많은 분파로 나누어졌는데 그 절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대략 상계대에서 갈린 파로 8세손 언부(문하시중공파) 8세손언상(도평의사공파) 8세손 언인(좌복사공파) 8세손 양언(밀직부사공파) 8세손 천익(판도공파) 8세손 을재(좌윤공파) 10세손 원(진사공파) 13세손 척(밀성군파) 13세손 원광(동정공파) 15세손 중미(밀직부원군파) 15세손 천(정국공파) 16세손 현(두정공파)을 12중조로 하여 12개파로 크게 나누어졌고 아랫대로 내려 오면서 여러 파로 분파되었다.

 

<행 렬 자>

(두정공파)

24(魯노 性성 炳병) 25(在재 信신 圭규) 26(鏞용 商상 鍾종) 27(浩호 洙수 淳순) 28(仁인 柱주 相상) 29(烈열 容용 熙희) 30(重중 時시 俊준) 31(鎬호 欽흠 九구) 32(海해 潤윤 漢한) 33(植식 根근 權권) 34(然연 憲헌 應응) 35(堯요 均균 培배)

 

(밀성부원군파)

27(熙희 烋휴) 28(奎규 基기) 29(鏞용 善선) 30(洙수 洽흡) 31(棅병 기) 32(燉돈 燁엽) 33(重중 南남) 34(鎬호 鎔용) 35(洛락 泳영) 36(東동 柱주) 37(炳병 炫현) 38(憲헌 錫석)

 

(판도판각공파)

29(漢한) 30(彬빈) 31(炳병) 32(圭규) 33(鎔용) 34(泳영) 35(東동) 36(熙희) 37(在재) 38(鎬호) 39(泰태) 40(根근)

 

(밀성군파)

27(善선 濬준) 28(泳영 柱주) 29(根근 然연) 30(裕유 種종) 31(喜희 鏞용) 32(常상 海해) 33(淵연 植식) 34(和화 思사) 35(炳병 城성)

 

(밀원부원군파)

 20(源원 淳순) 21(秉병 仁인) 22(燮섭 烈열) 23(聖성 堯요) 24(鎬호 鐸탁) 25(潤윤 海해) 26(東동 穆목) 27(愚우 燉돈) 28(周주 喜희) 29(鏞용 鎰일) 30(滿만 洛락) 31(秀수 根근)

 

潘南朴氏(번남박씨)

 

우리나라의 모든 박씨는 관향을 구별할 것 없이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를 유일조로 받들고 있으며 모든 박씨가 그의 혈손이다. 번남 박씨의 시조 응주 또는 박혁거세의 혈손으로 상계가 실전되어 혈연계보를 밝힐 수 없으나 번남(나주의 속현)에서 세거하던 호족의 후예로 호장을 지냈고 그의 6세손 은이 조선초기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익재동덕좌명공신으로 좌의정에 이르렀고, 번남군에 봉해졌다가 금성부원군에 진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응주를 선조(1세)로 하고 본관을 번남으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번남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명신 현유를 배출한 계통으로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5제인 상충(판전교사사)이 기틀을 잡아 6∼7세에 가세가 크게 번성하여 규(참판공파) 강(세양공파) 원(경주공파) 인(지후공파) 귀근(교위공파) 여해(감찰공파) 진창(군사공파) 충(정자공파) 문부(사정공파) 상질(동정공파) 송생(직장공파) 등 11개 파로 크게 나누어 졌고 그후 많은 분파 지파를 이루고 있다.

 

<행 렬 자>

27(雨우) 28(天천) 29(春춘) 30(憲헌) 31(鍾종) 32(淳순) 33(榮영) 34(熙희) 35(圭규) 36(鎭진) 37(洙수) 38(來래)

 

比安朴氏(비안박씨)

 

시조 朴瑀(박우)의 선세계는 실전되어 상고할 수 없다. 그는 고려 때 문하시중으로 염산군에 봉해지고 비안에 세거하였으므로 본관을 비안이라 하고 있다.

 

<행 렬 자>

26(甲갑) 27(鳳봉) 28(炳병) 29(寧녕) 30(茂무)

 

泗川朴氏(사천박씨)

 

시조 自文(자문)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48세손이다. 그의 조부 인겸은 고려 충렬왕때 공부상서와 첨의평리사를 역임했으며 사천군에 추봉되어 관향을 얻게 되었고 자문은 고려 충숙왕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민왕 때에 호부상서 사천군에 봉해졌으며 우왕 때에 안변으로 이주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은 사천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묘소는 경남 사천에 있다.

 

<행 렬 자>

27(用용) 28(晩만) 29(炳병) 30(寧녕) 31(茂무) 32(絶절) 33(庚경) 34(宰재) 35(聖성) 36(揆규)

 

三陟朴氏(삼척박씨)

 

시조 元慶(원경)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셋째 아들 언신(속함대군)의 후예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벼슬이 상서좌복사에 이르고 삼척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은 본관을 삼척으로 하게 되었으며 묘소는 경남 함양군 수동명 우명리 가성에 있다. 향사일은 10월10일이다.

 

商山朴氏(상산박씨)

 

사벌왕 언창은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제5자로서 상산박씨의 시조이다. 917년(경명왕1) 사벌 대군에 봉해지고 사벌방어장으로 외적을 막게 되었다. 당시 고려와 후백제의 침약을 받아 국토가 낙동강 동쪽으로 축소됨에 따라 사벌국이라 하고 왕으로 자립 통치하다가 11년 만에 후백제에 망했다. 이 사실은 조선 중종 때 학자 이언적이 <사벌국사>를 저술 비장했던 것을 후손 박세준이 발초 유전하므로써 밝혀졌다.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소목을 밝히지 못하고 고려 때 덕천창부사를 지낸 견을 1세로 하고 사벌국이 고려초에 상산군으로 개칭되었으므로 본관을 상산으로 하여 계세하고 있다.

 

<행 렬 자>

64(鍾종) 65(永영) 66(穆목) 67(烈열) 68(在재) 69(鉉현) 70(演연) 71(根근) 72(炯형) 73(垠은) 74(鎭진) 75(洙수) 76(東동) 77(熙희) 78(培배) 79(鎬호)

 

尙州朴氏(상주박씨)

 

시조 朴侶(박여)는 신라 경명왕의 제5자 사벌대군 언창의 12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삼중대광 첨의찬성사로 상산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상주(상산은 고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3(在재) 24(錫석) 25(漢한) 26(春춘) 27(榮영) 28(喆철) 29(鍾종) 30(洙수) 31(柱주) 32(烈열) 33(埈준)

 

善山朴氏(선산박씨)

 

시조 善敏(선민)은 신라 경명왕의 장자 밀성대군 언침의 22세손으로 음보로 관직이 목사에 이르렀고 선산을 관적으로 받았으며 그의 증손 숭이 조선조에 영의정으로 함북 명천 유배되어 그 곳에 정착 세거하면서 후손들이 본관 선산으로 하고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6(世세) 17(宗종) 18(柱주) 19(尙상) 20(秀수) 21(俊준) 22(炳병)

 

淳昌朴氏(순창박씨)

 

중소 斗幹(두간) 고려조에서 순창군에 봉해졌던 제세(정목)의 후손으로 훈 첨정을 역임했다. 순창군 제세의 전후세계가 병화로 실전되었기 때문에 후손들은 두간을 중조(1세)로 하고 본관을 순창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묘소는 경기도 개성군 부소산에 있다.

 

<행 렬 자>

16(永영) 17(秀수) 18(燦찬) 19(採채) 20(鎭진) 21(淳순) 22(東동) 23(炳병) 24(在재) 25(鍾종) 26(潤윤) 27(榮영)

 

順天朴氏(순천박씨)

 

시조 英規(영규)는 경명왕의 제 7자 강남대군 언지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 태조를 도와 건국의 대업을 이루기 위하여 부인 견씨와 함께 견훤의 세력을 수출하는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 공신으로 삼중대광좌승에 제수되었으며 전답을 하사 받고 승주군에 봉해졌다. 그후 세계가 실전되었다가 후손 난봉이 고려조에 등과하여 정승을 역임 평양(순천의 별호) 부원군에 봉해져 득관조로 하고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숙정을 1세조로 본관을 순천으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행 렬 자>

20(鉉현) 21(海해) 22(東동) 23(魯노) 24(圭규) 25(鍾종) 26(洙수 淳순 源원) 27(相상) 28(煥환)

 

驪州朴氏(여주박씨)

 

시조 지석(之碩)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원손 밀성대군 언침의 20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에 중훈대부 사재감부정을 역임했고 아버지 환(중랑장)은 조손 서창이 함길도 관찰사로 재직시에 여주에서 함흥으로 이거 정착하면서 그 후손들이 전향지 여주를 본관으로 하고 그를 시조 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8(錫석) 19(源원) 20(榮영) 21(炳병) 22(基기) 23(鎭진) 24(河하) 25(枝지) 26(燦찬) 27(培배) 28(鍊련) 29(海해) 30(根근) 31(默묵) 32(圭규)

 

靈巖朴氏(영암박씨)

 

시조 恒(항)은 신라 경명의 장자 밀성대군 언침의 10세손으로 고려 인종때에 좌정승을 지냈고 정사훈으로 영암군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영암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묘소는 함남 문천에 있다.

 

<행 렬 자>

31(榮영) 32(時시) 33(鎭진) 34(濟제) 35(權권) 36(燦찬) 37(基기) 38(鍾종) 39(漢한) 40(柄병) 41(炯형) 42(在재) 43(錫석)

 

寧海朴氏(영해박씨)

 

시조 朴堤上(박제상)은 파사왕의 6세손이다. 내물왕 때 이손 신랑주간 등을 지냈고, 418년 (납지왕) 고구려에 특파되어 불모로 있던 내물왕자 복호를 동반 귀국했고, 다시 왜국에 특파되어 불모로 있던 내물왕자 미사혼을 탈주 귀국케 하고 자신은 왜주의 악형으로 박다진 목도에서 소살당했으므로 왕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대아손에 추증 단양(현영해)군에 추봉했다. 그 부인 김씨는 미사흔만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남편을 부르며 호곡하다 단식 자진했고 두 딸 아기 아경 또한 아버지를 부르며 통절호곡하다가 순사하니 호국삼신여라 하여 치술신모사를 세워 치제케했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세계를 이어오다가 26세손 명천이 고려 때 벽상공신으로 예원(영해)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영해로 하였다.

 

<행 렬 자>

(판서공판)

57(夏하) 58(圭규) 59(錫석) 60(洙수) 61(鑽찬) 62(泳영) 63(程정) 64(晩만)

 

(태사공파)

57(夏하) 58(定정) 59(柄병) 60(周주) 61(錫석) 62(洵순) 63(桂계) 64(應응)

 

(돈옹공파)

57(淵연) 58(植식) 59(魯노 柄병) 60(重중) 61(鉉현) 62(泰태) 63(槿근) 64(煜욱)

 

(봉화공파)

57(承승) 58(柄병) 59(相상) 60(應응) 61(鉉현) 62(河하) 63(東동) 64(勳훈)

 

(칠의공파)

57(鎭진) 58(承승) 59(相상) 60(應응) 61(鉉현) 62(河하) 63(東동) 64(勳훈)

 

雲峰朴氏(운봉박씨)

 

시조 中華(중화)는 박혁거세의 40세손으로 고려말 찬성사를 역임하고 운봉군에 봉해져 본관을 운봉으로 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마조리에 있으며 향사일은 음10월 15일이다.

 

<행 렬 자>

5(從종) 6(孫손) 7(承승) 8(休휴) 9(孝효) 10(造조) 11(壽수) 12(鳳봉) 13(之지) 14(好호) 15(진) 16(雲운) 17(重중) 18(煊훤) 19(載재) 20(鎭진) 21(永영) 22(來래) 23(泰태) 24(錫석) 25(洪홍) 26(東동) 27(容용) 28(基기) 29(鍾종) 30(洙수) 31(泳영) 32(烈열)

 

蔚山朴氏(울산박씨)

 

시조 윤웅(允雄) 시호: 장무는 도시조 박혁거세의 36세손이다. 그는 1099년(고려 숙종4) 동여진의 10만 대군이 침공하자 4개월만에 이를 쳐서 평정하였다. 그 공으로 1106년(예종1) 대장군으로 익찬공신이 되어 흥려(울산의 고호)백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행 렬 자>

16(元원) 17(慶경) 18(而이) 19(廷정) 20(奉봉) 21(泰태) 22(東동) 23(錫석) 24(漢한 恒항) 25(義의 之지) 26(煥환 魯노 火(변)) 27(載재 基기 土(변)) 28(鉉현 鎭진 金(금)) 29(注주 源원 水(변)) 30(業업 植식 木(변)) 31(熙희 火(변))

 

月城(慶州)朴氏(월성(경주)박씨)

 

시조 朴彦儀(박언의)(월성대군)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제 8자이다. 경명왕의 아들 8대군이 각각 분적할 때 본관을 월성으로 하고 고려조에 재능직을 지낸 인육을 중조(1세)로 하였다.

 

<행 렬 자>

22(道도) 23(顯현) 24(祚조) 25(斗두) 26(鉉현) 27(海해)

 

殷豊朴氏(은풍박씨)

 

시조 致溫(치온)의 선세계는 밀성 대군의 원손이며 이후 세계가 실전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개국초에 군수를 지낸 그를 기1세로 은풍(풍기의 고호)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陰城朴氏(음성박씨)

 

시조 서 <자: 양종, 호: 죽계, 시호: 충정>는 1231년(고종 18) 서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몽고의 장수 살이타이가 쳐들어와 철주를 함락하고 이어 구주를 공격하자 삭주분도장군 김중은, 정주분도장군 김경손 등과 함께 구주에 모여 성을 사수 루차, 대포차 운제 등 온갖 무기로 공격해 오는 몽고군과 한달동안이나 격전 끝에 마침내 이를 물리쳤다. 구주를 버리고 개성을 먼저 함락 고종의 항복을 받고 군세를 정비하여 귀로에 다시 구주를 공격하는 몽고군을 또 다시 대파하여 몽고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때 몽고 자수 살리타이는 박서 같은 장수는 처음 봤다고 하였다. 그는 뒤에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고 음성백에 봉해졌다. 그는 원래 죽성 박씨였으나 음성백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본관을 음성으로 하게 되었다.

 

<행 렬 자>

59(時시) 60(鉉현 素소) 61(濟제 潤윤) 62(根근 采채) 63(容용 熙희) 64(基기) 65(商상) 66(泰태) 67(東동) 68(煥환) 69(圭규) 70(鎬호) 71(浚준) 72(植식) 73(炳병)

 

義興朴氏(의흥박씨)

 

<조선씨족통보>에 의흥박씨의 시조는 득서로 되어 있으나 그의 사적에 대해서는 알길 없고 문헌상 나타난 인물로는 1672년(현종 1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군수를 지낸 수검이 있다. 그의 자는 양백이요, 호는 임호로 경심의 아들로서 제천에서 살았다고 한다. 1930년 국세조사 상황을 보면 경북 군위군 악계면에 26가구 의흥면에 149가구의 집단 부락이 있고, 충북 제천군 금성면 구룡리에 40가구가 살고 있다.

 

麟蹄朴氏(의제박씨)

 

시조 律(율)은 밀성대군의 손자로 인제군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인제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0(宗종 寅인) 21(恒항 雲운) 22(命명 煥환) 23(斗두) 24(炫현) 25(在재)

 

全州朴氏(전주박씨)

 

시조 彦華(언화)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제 6자로서 완산(전주의 고호)대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0(相상) 21(奎규) 22(大대) 23(鮮선) 24(基기) 24(鉉현)

 

竹山朴氏(죽산박씨)

 

시조 奇悟(기오) 시호: 충정은 경명왕의 4째 아들 언립(죽성대군)의 아들로 고려초 삼한벽상공신태보삼중대광으로 계림군에 봉해졌다가 그 후 죽주백에 개봉되어 죽주(죽산의 고호)를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죽산으로 하였다.

 

<행 렬 자>

35(基기) 36(鎭진) 37(求구) 38(相상) 39(烈열) 40(在재) 41(鎬호) 42(洪홍) 43(秀수) 44(炳병) 45(圭규) 46(鎔용)

 

珍原朴氏(진원박씨)

 

진원 박씨는 밀양 박씨에서 분적한 계통으로 고려조에서 대장군을 지낸 進文(진문) <박혁거세의 42세손>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대해왔고 8세손 희중이 태종 때 벼슬하여 공신에 오르고 진원(장성의 속현)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진원이라 하여 계세하였다.

 

< 행 렬 자>

50(生생) 51(基기) 52(原원) 53(衍연 간 위)  54(而이) 55(前전) 56(根근) 57(春춘) 58(亨형) 59(萬만) 60(尙상) 61(德덕) 62(亮량) 63(源원) 64(重중) 65(鉉현) 66(泰태) 67(柱주) 68(炯형) 69(在지) 70( 鎔용)

 

昌原朴氏(창원박씨)

 

시조 박령(朴齡) (시호:양정)은 신라 경며왕의 제자 밀성대군 언침의 17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창원도호부사를를 지내고 창원군에 봉해짐으로써 밀성대군파에 분적하고 그 후손들이 본관을 창원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묘소는 경남 마산시 남산 부임지원에 있다.

 

<행 렬 자>

56(震진) 57(昌창) 58(世세) 59(尙상) 60(殷은) 61(贊찬)

 

春川朴氏(춘천박씨)

 

시조 恒(항) 자는 혁지로 신라 경명왕의 5자 강남대군 언지의 11세손이다. 고려 고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에 봉직되고 충주 목사를 거쳐 충렬왕 때 동지밀직사사로 원나라에 다녀와 좌명공신이 되고 춘성(춘천의 고호)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어 삼문학사 찬성사를 역임하였고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 하려고 고려에 군기 군량을 징발할 때 원나라의 지도와 홍차구등이 이를 감독하며 횡포가 심하자 원의 세조에게 글을 올려 견제했다. 문장이 뛰어났고, 일에 공명 정대했다. 후손들은 춘천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춘천이라 하였다.

 

<행 렬 자>

22(敏민 敬경) 23(濟제 泳영) 24(和화 榮영) 25(魯노 容용) 26(壎훈 遠원) 27(銖수 鎬호) 28(南남 承승) 29(宣선 柱주) 30(然연 顯열) 31(重중 珪규) 32(兌태 商상) 33(瀚한 求구) 34(秉병 禎정) 35(壽수 南남) 36(載재 義의)

 

忠州朴氏(충주박씨)

 

시조 瑛(영)은 박혁거세의 29세인 경명왕의 5째 아들 언창(사대대군)의 10세손(박혁거세의 39세손) 견의 손자가 된다. 그는 고려때 문과에 급제하고 부정을 지냈다. 충주는 고구려 그 이름이 국원성이었는데 신라 유리왕 때에 이를 취하였고 진흥왕 때 소경을 두어 귀족인 박씨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상주 박씨로부터 분적 누대 세거하여 오던 충주를 본관으로 하고 영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65(載재 濟제 夏하) 66(鍾종 根근 奎규) 67(原원 愚우 鍾종) 68(根근 基기 洙수) 69(容용 錫석 來래) 70(圭규  烈열 煥환)

 

泰安朴氏(태안박씨)

 

시조 元義(원의)는 신라 경명왕의 세자 밀성대군 언침의 9세손 을재(삼사좌윤)의 현손으로 원효(세흥군)의 아우이다. 그는 고려 때에 광록대부상서 좌복사로 유공하여 태안군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이 본관을 태안으로 하였다.

 

<행 렬 자>

22(榮영 煥환) 23(衡형 載재) 24(錫석) 25(浩호) 26(東동) 27(熙희 燦찬)

 

泰仁朴氏(태인박씨)

 

시조 彦祥(언상)은 신라 경명왕의 세자 밀성대군 언침의 8세손으로 검교대부 찬행의 2째 아들로서 고려 문종때 도평의사를 지냈다. 그의 8세손 거인이 고려말에 인의현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 정착세거하게 됨으로써 그의 증손 연생이 비로소 본관을 태인으로 하였다 한다.

 

<행 렬 자>

26(萬만) 27(容용) 28(均균) 29(求구) 30(來래) 31(燮섭) 32(在재) 33(永영) 34(相상) 35(熙희)

 

平山朴氏(평산박씨)

 

시조 智胤(지윤)은 고려 태조의 비 박씨의 아버지로 벼슬은 삼중대광시중에 이르렀으며 누대가 평산에 세거했기 때문에 평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平州朴氏(평주박씨)

 

시조 守卿(수경)의 선세계는 신라 종성 박씨의 후예라 하나 실전되었다. 그는 원윤으로 평주에 침입한 견원을 격퇴한 공으로 개국공신 평주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본관을 평주로 하였으나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광염을 기일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0(鎬호) 21(淳순) 22(模모) 23(炳병) 24(圭규) 25(鍾종) 26(泰태) 27(相상) 28(烈열) 29(均균)

 

平澤朴氏(평택박씨)

 

시조 之永(지영)의 선세계는 사벌대군 언창의 후예로 세계가 실전되어 오다가 후손 지영이 조선조에서 평택현사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산이 형조참판으로 1456년(세조2) 화를 당해 경원으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정착세거하면서 본관을 평택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52(世세) 53(潤윤) 54(章장) 55(慶경 載재) 56(仁인 時시) 57(柱주) 58(喆철) 59(均균) 60(商상) 61(淳순) 62(來래 治치)

 

咸陽朴氏(함양박씨)

 

시조 彦信(언신)은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제3자이다. 그가 속함대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였으나 문헌과 고증이 실전되어 누대가 실위되어 소목계통을 밝히지 못하고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낸 선을 중시조(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본관은 속함이 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함양으로 하였다. 중시조의 묘소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사금동 갑좌에 있다.

 

<행 렬 자>

22(鎭진) 23(漢한) 24(相상) 25(燦찬) 26(在재) 27(錫석) 28(澈철) 29(采채) 30(赫혁) 31(均균) 32(鉉현) 33(泰태) 34(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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