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3
1975년 센서스에 의하면 영씨는 1가구로 집계 발표 되었으나, 영유성(서울)에 따르면 대구에 4촌동생이 인천에 8촌형이 살고 있으며 이밖에는 그의 일가가 평북 선천에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1
시조 태금룡은 발해국 진왕의 원손으로 고려 고종때 김교에서 몽고군을 격퇴하고 전승한 공으로 대장군에 오르고 영순(상주고호)군에 추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은 본관을 영순으로 하고 있다. 南原太氏(남원태씨) 남원태씨는 협계태씨의 분파이다. 태집성의 9세손 맹례가 단종때 진사로 화를 입어 함북 길주로 유배되었는데 후손들이 그곳에 세거하면서 맹례를 시조로 하고 조상의 본향인 남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25(相상) 26(煥환) 27(峻준) 28(錫석) 29(源원) 30(植식) 31(光광) 32(成성) 陜溪太氏(협계태씨) 시조 중상은 속미하에서 출생 천문, 지리와 병법에 능통하였으며 696년(신라효소왕5) 고구려의 유민을 이끌고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쪽에 진국을 건국하였다. 그후 10세손인 태광현은 발해가 망한 뒤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9
파주 염씨는 중국 황제의 후손으로서 헌원씨때는 공손씨라 하였으나 희수지방에 이거하면서 희씨로 개성했다. 그 후 희창의의 아들 전욱, 전욱의 증손이 대염씨라 했다가 다시 왕보씨로 개성했다. 그의 후손이 중국 하동에 이주하면서부터 염씨로 개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후 삼한공신으로 벼슬이 대사도(호조판서의 별칭)에 이르렀던 교명이 후당시(신라말기)에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 봉성(파주고호)에 들어와 잉거하게 됨으로써 염씨의 동래 시조가 되었고 그의 후손인 제신(시호 충경)은 1304년(고려 충렬왕30)에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1세 때 원나라에 들어가 고모부 말길(관직평장사)의 집에서 10년 동안 수확하고 정동 성랑중이 되었다가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하여 환국한 후 충목왕때 수성익재공신으로 삼사..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7
염씨는 본래 중국의 성씨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원년에 의형대령을 지낸 장이 있었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옛부터 전해 오는 성씨이나 1930년 국세조사에는 단 1가구가 전북 옥강군 개정면 아산리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6
염씨는 본래 중국의 성씨로 명태조 때 사관이었던 위가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문헌상 나타나지 않다가 1930년 국세조사때 비로소 나타난 성씨이다. 국세조사때는 전국에 200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5
연씨는 본래 중국의 성씨인바 우리나라에서는 전주와 시조 미고인 곡산의 두본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전주연씨의 시조는 고려 태조 원년에 2등공신이 된 주라고 한다. 이보다 앞선 인물로 삼국사기에 신라 이벌랑 진장군이 보이나 오늘날의 연씨와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연씨는 1930년 국세조사 당시 7가구가 있었는데 그중 6가구가 평남 성천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3
연씨는 원래 중국 성씨로 여러 문헌에 자주 나타나는 성씨이다. 중국에서는 주나라 경왕때에 공자의 제자 중 급이 있었고 한나라 소제때 창이 있었는데 연나라 이름을 성씨로 하였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에 8대성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연씨라 전해지며 삼국사기에 성왕때의 병관좌평 실 등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조선씨족 통보에 의하면 백제 8대성으 하나로 정주(정평의 별호)연씨와 그 밖에 시조 미고의 관이 여섯이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로 이북지방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2
시조 계령은 중국 흥농 사람으로서 고려 때 래조하여 금자광록대부문하시랑과 신호위상장군을 역임하였다. 한편 그의 7세손 수창이 중국에서 고려때 사신으로 래조하여 좌복사가 되었다는 설과 고려말에 공주를 배종래조하여 곡산에 정착 세거하였다는 설이 전하나, 7세손에 관한 설을 고증할 자료가 없다. 다만, 11손에 연주가 고려조에 검교 한성부윤을 지냈는데 조선개국후 태조가 누차 초치하였으나 응하지 않아 후에 숭록대부 좌찬성으로 곡산군에 추봉되고 대광보국숭록대부로 곡산 부원군에 가작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본관을 곡산이라 하고 있다. 24(會회) 25(鍾종) 26(羽우) 27(秉병) 28(熙희) 29(圭규) 30(欽흠) 31(濟제) 32(模모) 33(應응) 34(基기 均균) 35(鎬호 鏞용) 36(永영 澤택)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29
시조 선재(善才)는 송나라 사람으로 송나라에게 간의대부에 올랐었다. 그는 송나라로부터 고려로 귀화하여 의령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그곳에 정착세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의령을 본관으로 하였다. 18(夢몽 善선) 19(謙겸 重중) 20(日일 命명) 21(純순 極극) 22(相상 挺정)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28
여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으며 동래조가 누구인지도 전하지 않고 1930년 국세조사때 비로서 나타난 성씨이다.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 김천, 희양에 각각 1가구씩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