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張氏)


 우리나라 각관 장씨의 기원은 중국으로부터 도래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고려 왕건태조 창업초 개국공신인 장정필(태사공)은 신라말에 덕수장씨 시조 선무장군 장순용은 고려 고종 연대에 원나라 제국공주 출래시 시종관으로 절강 장씨 시조 장해빈은 조선 선조조 정유난 당시에 각기 중국으로부터 입국하여 이 3인의 자손이 현재 전국에 산거하고 있다 한다. 이외에도 신라 및 백제 태봉 발해시대에 장보고, 장웅, 장변, 장건영, 장빈, 장분, 장희암, 장무, 장일, 장문휴 같은 명장거유가 삼국유사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들의 출생지 및 관향 계통과 유래는 알 수 없다.
 또한 장경은 중국관서 홍농인으로 대광공주 출래시 시종신인 8학사중의 한 사람으로 고려초에 입국하여 광종무오(고려개국40)에 김자광록대부시중상서를 역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역사 계보를 알 수 없고 고려사에 의하면 신라말에 장유는 피난차 중국 오나라에 건너가 화어를 습득하고 귀국하여 고려 광종 때 광평시랑을 지냈고 아들 연우는 현종 때 호부상서 좌복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흥성과 흥덕장씨는 장유를 시조로 하였고, 봉성, 옥강, 옥천, 결성, 단양, 목천, 려흥, 순천, 등 제장씨는 장유가 장경의 아들이며 장정필의 10세손이라고 하였으나 장유가 신라에서 생장했는지 중국에서 귀화했는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우리나라 장씨는 덕수와 절강장씨를 제외한 인동(옥산) 안동, 순천, 구례, 봉성, 단양, 목천, 울진, 결성, 흥성, 흥덕, 하산, 려흥, 부안 등 제장씨는 장정필의 혈손으로서 그를 도시조로 하고 있으나 각 관계보간에 연대으 차이가 있으니 박고정정함이 좋을 것으로 안다.
 도시조 장정필은 본래 중국 절강성 소흥부용흥 사람이다. 888년에 출생하여 5세 때 난을 l하여 아버지 원을 다라 동래하여 강원도 강릉에서 경북 인동 노전으로 옮겨 살았다. 18세 때 사신을 따라 입당 24세 때 대과에 장원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입산하여 수천제자에게 성현의 도를 가르치니 덕비강유하고 행의효우와 문장 학행이 중화에서 뛰어나 시인이 당세부자라고 하였다. 천자가 그의 현준함을 듣고 소명근강 하였으므로 나아가 이부상서를 지내면서 병화로 학교가 황폐되자 성균관을 창건하여 조의로 의관문물 혼상제례를 그의 제도로 준행하니 당시의 이주이여라 하였다. 소인각로 김남석의 무고로 기관 귀국하여 인동노전에서 제가 수백인에게 예의를 강학하고 조두지례를 제정하니 세인이 석서 대현이요 금동(고려)부자라 약전약후동방 일인이요 동방천재지종사라 하였다.
 930년(고려 태조13) 김선평 권행과 함께 향병을 모아 안동에서 후백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공을 세웠고 935년에 신라를 공략하여 삼한통합에 공이 컸으므로 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 태사령운사, 고창군에 옥산부원군이 더해지고 록권을 하사받았다. 후세 사람들이 그 공덕을 추모하여 인동에 노전서원을 세워 제향하고, 안동에 삼태사공신묘를 세워 삼태사를 숭배하고 매년 춘추에 향사한다.

結城張氏(결성장씨)

 

시조 사는 도시조 정필의 14세손으로 고려 때 추성보리찬화공신, 광정대부벽상삼중대광문하시중, 판전리, 감찰사사, 상호군으로 결성부원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결성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시조 사는 흥성의 평산서원에 제향.

 

<행 렬 자>

41(淳순) 42(來래) 43(勳훈) 44(均균) 45(善선) 46(澤택) 47(稙직) 48(赫혁) 49(珪규) 50(鏞용) 51(演연) 52(東동) 53(烈열) 54(遠원) 55(鎬호) 56(漢한)

 

求禮(鳳城)張氏(구례봉성장씨)

 

시조 악(岳)의 시호는 양간으로 도시조 정필의 21세손이다. 그는 고려때 시중으로 있으면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나이 이미 70에 매번 입조할 때 마다 수심이 얼굴에 가득하니 왕이 그 까닭을 하문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생장한 곳이 봉생이라 정든 고향을 생각해서 그러합니다"하였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즉석에서 봉성(구례의 별호)을 식읍으로 내리고 봉성군에 봉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구례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시조의 묘소는 구례 백운동에 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구례장씨의 시조는 고려 때 상서를 지내고 봉성군에 봉해진 을용으로 한다고도 한다.

 

<행 렬 자>

19(萬만) 20(漢한) 21(載재) 22(日일) 23(成성) 24(心심) 25(相상) 26(寅인) 27(燮섭) 28(時시) 29(鎭진)

 

羅州張氏(나주장씨)

 

시조 세동의 선세계는 고려 개국공신 삼태사중의 한 사람인 정필의 후손 유의 21세손 호채(부호군)의 2남이다. 그는 인조 때 가선대부로 나주에서 세거하다가 황해도 장연으로 이거하면서 본래 세거지인 나주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4(旭욱 成성) 15(亨형 埈준) 16(宰재 珍진) 17(哲철 洪홍) 18(秀수 元원) 19(志지 晋진) 20(在재 原원) 21(碩석 益익)

 

丹陽張氏(단양장씨)

 

시조 순익(시호 충정)은 장씨의 도시조 정필의 5세손으로 지현의 3자이다. 그가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문하시중으로서 단양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단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단양장씨대동)

37(用용 甫보) 38(鳳봉 九구) 39(南남 柄병) 40(寧녕 行행) 41(成성 盛성) 42(起기 熙희) 43(庠상 慶) 44(宰재 華화) 45(重중 廷정) 46(揆규 昊호) 47(學학) 48(東동) 49(寅인) 50(卿경) 51(振진) 52(範범)

 

德水張氏(덕수장씨)

 

시조 순용은 회회인으로 1275년(고려 충렬왕1) 충렬왕비(원나라 세조의 딸) 제국대장 공주를 배행 우리나라 덕수현에 살면서 금자광록대부 문하찬성사를 지내고 덕수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덕수현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기 때문에 후손들은 본관을 덕수로 하였다. 그의 시호는 공숙이다.

 

<행 렬 자>

21(世세) 22(鎭진) 23(淳순) 24(秀수) 25(慶경) 26(在재) 27(鉉현) 28(永영) 29(桓환) 30(燮섭) 31(圭규) 32(鎬호) 33(源원) 34(杓표) 35(志지) 36(坤곤) 37(鎔용) 38(求구) 39(材재) 40(燁엽) 41(基기) 42(鐸탁) 43(海해) 44(植식) 45(應응) 46(培배) 47(鈗윤) 48(泰태) 49(樂락) 50(燦찬)

 

木川張氏(목천장씨)

 

중시조(1세) 빈은 장씨 도시조인 정필의 14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 목천 현감을 역임하고 충렬왕 때 첨의찬성사를 지냈다. 외적이 침입했을 때 공을 세워 목천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목천을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0(應응) 11(洌열 渭위 潤윤) 12(弘홍) 13(九구 命명) 14(漢한) 15(以이 世세) 16(毅의 雲운 處처) 17(祖조 志지) 18(水(변)) 19(權권) 20(烈열) 21(基기 圭규) 22(鎬호 鍾종 鉉현) 23(永영 泳영 洹원) 24(柱주 植식 模모 根근) 25(炳병 炯형)

 

扶安張氏(부안장씨)

 

시조 을호(시호 문경)는 도시조 정필의 7세손이며 금용의 현손이다. 그가 고려 인종때 좌복사로서 부령(부안의 고호)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그 지방에 세거 본관을 부안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9(應응) 20(齡령) 21(運운) 22(在재) 23(仁인) 24(鳳봉) 25(漢한) 26(秀수) 27(炯형) 28(基기) 29(鎭진) 30(永영)

 

順天張氏(순천장씨)

 

시조 장천노는 시조 장정필의 10세손 유의 제2자이다. 그는 965년(광종16)에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 금자광록대부, 중서시랑을 지내고 순천군에 봉해졌으므로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순천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36(仁인 在재 奎규) 37(鎬호 商상 九구) 38(洛락 汶문 浩호) 39(秀수 相상 杓표) 40(熙희 熏훈 然연) 41(周주 培배 坤곤) 42(鍾종 銖수 錫석) 43(永영 洙수 河하) 44(秉병 極극 樂락) 45(烈열 炯형 爀혁) 46(敎교 載재 孝효) 47(鉉현 鍾종 善선)

 

安東張氏(안동장씨)

 

시조 정필의 초명은 길이요 시호는 충헌이다. 그는 본래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888년(신라 진성여왕2) 대사마장군 원의 아들로 태어나 5세 되던해 아버지 원이 본국 정치의 문란함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망명해 올 때 같이 따라 들어와 강원도 강릉땅에 머무르다가 뒤에 경북 노전으로 이거 그곳에 정주하게 되었다. 18세 때 중국에 파견하는 정사를 수행 다시 당나라에 들어갔으며 그곳에 정주하게 되었다. 18세 때 중국에 파견하는 정사를 수행 다시 당나라에 들어갔으며 그 곳에서 수업하여 24세 때 문과에 장원하였으나 벼슬을 사양 입산하여 수많은 제자들에게 성현의 도를 가르치니 그 문장 덕행이 중화에서 뛰어나 당세대부라 일컬었다. 이리하여 그 명성이 천자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천자의 강권으로 한 때 벼슬길에 올라 이부상서에 이르렀다가 벼슬을 버리고 환국하여 영남노전에서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강론하였다. 930년(고려 태조13) 성주 김선평 형관 권행과 더불어 창의하여 병산에서 견훤군을 크게 무찌른 공으로 삼중대광보사벽상공신 태사에 오르고 고창(안동)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다.

 

<행 렬 자>

31(載재) 32(善선) 33(泰태) 34(柱주) 35(勳훈) 36(玹현) 37(鎔용) 38(洙수) 39(來래) 40(燁엽) 41(孝효) 42(鐵철) 43(永영) 44(相상) 45(煥환) 46(基기) 47(鎬호)

 

永同張氏(영동장씨)

 

시조 沆(항)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 두정을 거쳐 좌사의 대부에 이르러 충숙왕이 1321년부터 5년동안 원나라에 양유되었을 때 시종한 공으로 귀국후 나주 목사가 되었다. 충혜왕 때 평양윤 등을 지낸 뒤 영산(영동별호)군에 봉해졌다. 영동의 화암서원에 제향 그의 선대나 후손의 분포상황은 미고이다.

 

禮山張氏(예산장씨)

 

시조 영위는 정필의 10세손이다. 고려조에서 이부상서 평장사를 지내면서 공이 있어 예산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예산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예산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0(孫손) 21(漢한) 22(世세) 23(致치) 24(天천 賢현) 25(景경) 26(克극 綱강) 27(車(변)) 28(翼익) 29(應응) 30(以이) 31(德덕) 32(基기) 33(鎭진) 34(洙수) 35(勳훈) 36(玹현)

 

沃溝張氏(옥구장씨)

 

시조 익은 도시조 정필의 12세손으로서 고려 때 집현전대제학, 평장사를 지내고 옥성(옥강의 별호)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후손들이 승문정자 판도판서를 지낸 장송을 1세로 하고 본관을 옥구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19(文문) 20(煥환) 21(基기) 22(鉉현) 23(源원) 24(秉병) 25(愚우) 26(時시) 27(鎔용) 28(浩호) 29(相상) 30(應응) 31(達달) 32(鍾종) 33(河하) 34(東동) 35(熙희) 36(圭규) 37(錫석) 38(丞승)

 

蔚珍張氏(울진장씨)

 

시조 말익은 장씨의 도시조 정필의 5세손으로서 시호는 문성이다. 그는 고려 정종 때 호부상서문하시중평장사상주국으로 울진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울진을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9(憲헌 悳덕) 30(重중 起기) 31(鎭진 鉉현) 32(演연 潤윤) 33(寅인 震진) 34(默묵 然연) 35(信신 中중) 36(鎔용 欽흠) 37(浩허 洙수) 38(求구 來래) 39(煥환 炯형) 40(達달 執집) 41(兌태 義의) 42(永영 泰태)

 

仁同張氏(인동장씨)

 

시조 김용은 인동인으로서 정필의 후손이다. 고려 때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을 지냈으며 후손들이 옥산(인동의 별호)에 세거하면서 지명에 따라 본관을 옥산으로 하여 장금용을 기세 습승하여 오다가 이조말엽에 이르러 옥산이 인동으로 개칭됨에 따라 인동으로 하였는데 장씨는 기어 옥산이라 하여 지금도 옥산화벌이라 하고 인동 재향 자손들은 구호대로 본관을 옥산으로 쓴다. 정필(태사공)이 인동노전에서 강학하고 옥산부원군에 봉해졌고 노전서원에서 조두제향한 사실이 증명되나 세대가 유원하여 사실 계대를 알 수 없으므로 정필을 도시조로 하고 김용(상장군)을 시조로 한다. 전고대방에 인동장씨의 시조는 장김용이고 장안세(충정공) 장백(태상경) 장계(옥산군) 장순손(문숙공)등은 대별 파조로 장씨 성중에 자손들이 가장 많으며 인동에 거주함으로써 본관을 인동으로 하였다.

 

<행 렬 자>

(종파)

28(東동) 29(燮섭) 30(睦목 龍용) 31(鎭진 斗두) 32(永영) 33(植식) 34(性성 炳병) 35(圭규) 36(鍾종) 37(源원) 38(根근) 39(愚우)

 

(황파)

28(模모) 29(有유) 30(澤택) 31(柄병) 32(熙희) 33(在재) 34(鎔용) 35(漢한) 36(根근) 37(愚우) 38(培배) 39(鍾종)

 

(청주파)

28(守수) 29(哲철) 30(壽수) 31(錫석) 32(洛락) 33(植식) 34(炳병) 35(圭규)

 

(울진파)

28(述술) 29(時시) 30(奎규) 31(錫석) 32(제) 33(秉병) 34(炯형)

 

(양양파)

28(世세) 29(志지) 30(翼익) 31(奎규) 32(永영) 33(植식) 34(性성) 35(圭규) 36(鍾종) 37(洙수)

 

(진평파)

28(樞추) 29(煥환) 30(喜희) 31(鉉현) 32(泳영) 33(植식) 34(炳병) 35(圭규) 36(鍾종) 37(源원) 38(根근) 39(默묵) 40(培배) 41(鎬호)

 

(진가파)

28(奎규) 29(斗두) 30(璣기) 31(永영) 32(植식) 33(炳병) 34(基기) 35(鎬호) 36(泰태) 37(權권) 38(燁엽) 39(在재) 40(鍾종) 41(源원)

 

(남산파)

28(樞추) 29(錫석) 30(遠원) 31(相상) 32(志지 炳병) 33(世세) 34(翼익) 35(洙수) 36(根근) 37(熙희) 38(培배) 39(鍾종) 40(洛락) 41(東동)

 

(경파)

28(汲급) 29(植식) 30(焌준) 31(基기) 32(錫석) 33(淳순) 34(東동) 35(熙희) 36(圭규) 37(鉉현) 38(洙수) 39(根근) 40(熙희) 41(培배)

 

(김구파)

28(秀수) 29(榮영) 30(圭규) 31(鉉현) 32(遠원) 33(相상) 34(夏하) 35(喜희) 36(鎬호) 37(雨우) 38(植식) 39(炳병) 40(培배) 41(鍾종)

 

(고흥파)

28(來래) 29(炳병) 30(埰채) 31(鉉현) 32(泳영) 33(植식) 34(煥환) 35(基기) 36(鎬호) 37(洛락) 38(根근) 39(默묵) 40(培배) 41(鍾종)

 

(청안파)

28(培배) 29(鉉현) 30(淳순) 31(相상) 32(炳병)

 

(영광파)

28(東동) 29(鍾종) 30(洙수) 31(相상) 32(炳병) 33(世세) 34(鎬호) 35(漢한) 36(根근) 37(熙희) 38(培배) 39(鍾종) 40(洛락) 41(極극)

 

(함평파)

28(志지) 29(鉉현) 30(澤택) 31(相상) 32(炳병) 33(在재) 34(鍾종) 35(泳영) 36(權권) 37(熙희) 38(培배) 39(鎬호) 40(洛락) 41(杞기)

 

(흥해파)

28(泰태) 29(斗두) 30(志지) 31(在재) 32(鎬호) 33(洛락) 34(相상) 35(炳병) 36(圭규) 37(鉉현) 38(洙수) 39(東동) 40(煥환) 41(培배)

 

(화순파)

28(浿패) 29(杓표) 30(煥환) 31(基기) 32(鎬호) 33(洛락) 34(相상) 35(炳병) 36(圭규) 37(鉉현) 38(洙수) 39(東동) 40(煥환) 41(培배)

 

(문숙공파)

28(承승) 29(泰태) 30(次차) 31(世세) 32(翼익) 33(鎭진) 34(永영) 35(植식) 36(炳병) 37(基기)

 

全州張氏(전주장씨)

 

시조 응익은 고려의 개국공신 태사공 정필의 5세손으로 고려 때 전주부원군(일설 강화군)에 봉해져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본관을 전주라 하였다.

 

<행 렬 자>

31(載재) 32(善선) 33(泰태) 34(柱주) 35(勳훈) 36(玹현) 37(鎔용) 38(洙수) 39(來래) 40(燁엽) 41(孝효) 42(鐵철) 43(永영) 44(相상) 45(煥환) 46(基기) 47(鎬호)

 

浙江張氏(절강장씨)

 

시조 해빈은 본래 중국 항주의 속현인 오강현 사람으로 정유 재란 때 유격장군 오유충의 휘하 장사로 와서 울산의 증성싸움에서 유탄을 맞아 귀국하지 못하고 군위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북산 서원에 제향.

 

知禮張氏(지례장씨)

 

시조 일성은 시호가 충무이다. 그는 본래 정필의 13세손으로서 고려 충숙왕때 문과에 급제 이성계를 도와 아지발도를 격퇴한 공으로 지례백에 봉하여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지례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0(臣신) 21(光광) 22(사(변)) 23(雲운 起기) 24(世세 時시) 25(元원 漢한) 26(德덕 翼익)

 

鎭安張氏(진안장씨)

 

시조 원열은 도시조 정필의 13세손으로서 고려 때 판서평리를 지냈다. 그의 손자 사익(시호 정효)이 응양장군으로 공이 있어 좌리공신으로 진안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진안으로 해서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31(載재 鐵철) 32(善선 永영) 33(泰태 相상) 34(柱주 煥환) 35(勳훈 基기) 36(玹현 鎬호) 37(鎔용) 38(洙수) 39(來래) 40(燁엽) 41(孝효)

 

晋州張氏(진주장씨)

 

시조 방언은 인진부사를 지냈으며 그 후손으로 희운의 아들 두주가 1717년(숙종43)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판교 군수를 역임. 호상의 아들 영석이 1893년(고종3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사실이 국조방목에 나타나있다. 그 후손은 현재 강원도 이천지방에 수십가구가 살고 있다.

 

鎭川張氏(진천장씨)

 

시조 유는 장씨 도시조 정필의 9세손으로 고려 때 봉익대부좌우위충추원사문하시중으로 공이 있어 처음 예산군에 봉해졌다가 후에 진천군으로 개봉되었다. 그후 벼슬을 그만 두고 진천에 낙향하여 세거했기 때문에 진천을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30(錫석) 31(永영) 32(根근) 33(炳병) 34(基기) 35(愚우) 36(執집) 37(命명) 38(寧녕) 39(成성) 40(熙희) 41(康강) 42(宰재) 43(廷정) 44(揆규) 45(學학)

 

昌寧張氏(창녕장씨)

 

시조 천익은 정필(태사공)의 후예로서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1228년(고종15)에 승평판관이 되었으며 직사관을 거쳐 1262년 전중시어사가 되어 몽고에 사행한 후 국자제주가 되었으며 1265년 중서사인으로 다시 몽고에 다녀왔다. 다음해 예부시랑으로 정조사가 되어 몽고에 다녀왔다. 1270년 삼별초가 난을 일으켜 진도에 입거하니 대장군으로 경상도 수로방호사가 되어 이를 진압하고 동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이해 충렬왕이 즉위하자 지첨의부사보문서 대학사수국사에 이르고 하산(창녕의 별호)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 곳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창녕이라 한다.

 

<행 렬 자>

21(誠성) 22(日(변)) 23(世세) 24(警경) 25(承승) 26(復복) 27(善선) 28(泰태)

 

靑松張氏(청송장씨)

 

시조 영민은 정필(태사공)의 10세손으로 고려 때에 중추원사를 역임하면서 공을 세워 청송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청송이라 하였다.

 

<행 렬 자>

26(弘홍) 27(震진) 28(萬만) 29(仲중) 30(致치) 31(載재) 32(善선) 33(泰태) 34(柱주) 35(勳훈) 36(玹현) 37(鎔용) 38(洙수) 39(來래) 40(燁엽) 41(孝효) 42(鐵철) 43(泳영) 44(相상) 45(煥환) 46(基기) 47(鎬호)

 

興城(興德)張氏(흥성(흥덕)장씨)

 

시조 유는 벼슬이 광평시랑에 이르렀다. 그는 상질(흥성의 고호)현 사람으로 신라말에 난을 피하여 중국에 들어가 중국어를 배웠으며 고려 태조가 나라를 통합한 뒤에 귀국하여 고려 광종 때에 예빈성에 있으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신의 접대를 맡아했다. 시조 유가 흥성 사람이었고 또 그의 6세손 기가 흥산(흥성의 별호)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흥성(흥덕)이라 하였다. 묘소는 전북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있고 매년 3월 20일에 향사한다.

 

<행 렬 자>

19(鎭진 錫석 銓전) 20(淳순 澤택) 21(植식 柱주 根근 柄병) 22(烈열 煥환 焌준 熙희 燁엽) 23(圭규 奎규 在재 均균 坤곤) 24(鎬호 鍈영 鏞용 鍾종 鉉현) 25(洙수 浩호 海해) 26(桓환 東동) 27(勳훈 然연) 28(敎교 重중) 29(銖수 鍊련)

 

興陽張氏(흥양장씨)

 

시조 선익은 고려 개국공신 태사공 정필의 5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흥양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흥양(고흥의 고호)이라 하고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31(載재) 32(善선) 33(泰태) 34(柱주) 35(勳훈) 36(玹현) 37(鎔용) 38(洙수) 39(來래) 40(燁엽) 41(孝효) 42(鐵철) 43(永영) 44(相상) 45(煥환) 46(基기) 47(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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