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24
시조 경진은 고려 명종 때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그 후의 계대는 상고할 수 없기 때문에 후손인 경번을 1세조로 하고 있다. 경번은 고려조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뒤 청주에 세거하였으며 그의 4세손인 복흥이 진충동덕 협보공신으로 청원(청주) 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청주로 하게 된 것이다. 묘소는 청주서산에 있으며 음10월10일에 향사한다. 16(祥상 休휴) 17(聖성 來래) 18(時시 善선) 19(來래 履이) 20(大대 星성) 21(再재) 22(重중) 23(錫석) 24(浩호) 25(箕기 秀수) 26(顯현 文문) 27(奎규 匡광) 28(九구 允윤) 29(濟제 濬준) 30(根근 植식) 31(菩보 益익)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23
문헌에는 황간 견씨와 상주 견씨의 2본으로 되어 있으나 시조는 아자개를 시조로한 견시와 견훤을 시조로한 견씨가 본관을 각각 달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22
시조 견권은 고려개국 2등공신이며 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을 토벌할 때 대상으로 출정하여 후백제를 멸망케 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면서 본관을 천령이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21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처음 나라난 성씨로서 당시 함북 종성군 행영면 행영동에 3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경기도 여주에서 9대조 때 이주했다고 하며 본관은 원향인 여주로 하고 있다.
시조 두현의 선세계는 중국 주나라 위장군의 원손으로 전해진다. 그는 원나라 직성사인으로 학사에 이르렀으며 고려조에 노국대장공주를 배행한 6시랑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개성에 정착세거하면서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개성이라 하였다. 12(佑우) 13(基기) 14(亮량) 15(會회) 16(淳순) 太原龐氏(태원방씨) 시조 발은 중국 태원사람으로 관직은 지휘 도총장으로 우리 나라에 귀화하여 정착세거하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태원이라 하고 세계를 계대하고 있다. 12(心심) 13(元원) 14(斗두) 15(燮섭) 16(龍용)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20
시조 희상은 본래 중국 강음현 사람으로 1598년(선조 31) 명나라의 구원병으로 우리나라에 와 공을 세우고 그대로 귀화해서 동래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향인 강음을 본관으로 세계하고 있다. 9(顯현) 10(基기) 11(致치) 12(浩호) 13(柱주) 14(熙희) 15(培배 壽수) 16(鎬호) 17(澤택) 延安段氏(연안단씨) 시조 유인은 이조때 현감을 지냈다. 상계는 고사에 나타나는 백제때 유학자 단양이 (오경박사)가 있을 뿐 그 외에는 상고 할 바 없어 미상이다. 본관은 연안단씨 외에 강음단씨가 나타났고 그 외에도 풍덕, 전주, 고산, 강릉, 황주, 가음, 화산 등이 있으나 미고이다. 단씨는 1960년도 국세조사에 의하면 346명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현대 재벌의 한사람으로 단사천(해성산업,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19
강씨는 중국의 성씨로서 진나라의 대부 강일의 후예로 전하는데 언제 동래하였는지 확실치 않다. 한편 괴산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도 있으나 충주의 분파로 간주된다. 분포는 충북 괴산, 음성, 경북 상주, 충남 연기, 아산 예산, 경남 통영, 평남 평원 등지에 수십 가구가 산재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18
시조 姜以式(강이식)은 고구려조에서 도원수를 지내면서 많은 전공을 세운 공신이다. 597년(고구려 야양왕, 신라 진평왕 19)에 수나라 문제가 침략의 야욕으로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왕은 군신을 모아놓고 이에 회답할 것을 논의할 때 그는 이와 같은 무례한 글을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이 이에 수긍하고 곧 싸울 것을 명하자 그는 도원수로서 정병 5만을 인솔하고 임유관을 정벌 수나라 군사 30만을 단번에 격퇴하고 개선했다. 603년에 수나라 양제가 다시 200만 대군으로 쳐들어올 때 중신회의에서는 역시 중과불적인 만큼 요동 일부를 떼어주고 강화할 것을 논의했으나 그는 이에 반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고 다시 수나라와 대전요동성 살수(청천강) 등지의 싸움에서 수군을 크게 격..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15
시조 강후(康候)는 중국 주나라 무왕의 아우 강숙봉의 둘째 아들로 기원전 198년에 기자와 함께 평양에 들어와 왕실의 교화를 조성한 공으로 기자가 그의 위적을 가상히 여겨 관정대훈 공신에 책록하고 그의 아버지인 강숙의 강자를 사성함으로써 모든 강씨의 득성 시조가 되었다. 그의 67세손인 호경은 태조의 외조이며 고려 건국의 기반을 닦는데 많은 공을 세워 국조대왕에 추재되고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다. 또한 후의 80세손인 지연이 신천에 세거하면서 고려 명종 때 신성부원군에게 봉해지면서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으로 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강씨는 후를 득성시조 호경을 중시조 지연을 득관조로 분류하고 있다. 북제주 조천서원에 제향. 46(善선 佑우 鍾종) 47(洙수 求구 泳영) 48(樂락 根근 相상) 49(烈..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4:14
1930년도 국세조사때 비로소 나타난 성씨로서 경남 통영군 광도면 우동리에 강선악 1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어려서 그곳에서 왔다고 할 뿐 내력은 미상이다. 본관은 진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