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56
옹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성씨이다. 그런데 1930년 국세조사때 처음으로 경남 창원군 능남면 안민리에 8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후 조사결과 순창 웅씨가 그곳으로 이주해 있다가 1908년 민적에 기재할 대 잘못 기록되어 옹씨가 된 것이라 한다. 1960년 국세조사에는 인구 50명으로 되어 있으며 본관을 파평 단본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55
옹씨는 순창과 부령의 두 본이 있는데 순창용씨의 시조는 명종때 판관을 지낸 몽진으로 알려져 있으나 부령 옹씨의 시조는 알 수 없다. 순창 옹씨의 시조 몽진은 태운이 아들로서 1553년(명종8)친경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고 음성현감을 거쳐 판관을 지냈다. 1930년 조사에 의하면 순창, 정읍등 전북에 50여가구 살고 있었고 기타 지방을 합하여 67가구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53
당나라와 진나라를 통합한 숙우의 12세손 소후가 아우 수를 온에 봉하니 국호를 온이라 하고 도읍을 평원에 정하였다. 그후 온국의 공자장이 국명을 따라서 성으로 삼으니 이로부터 온씨의 연원이 이루어졌다. 그후 세원하고 고증이 없어 세계를 상고할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온씨의 시원은 고구려의 평원왕 때 온달이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그로부터 온씨 혈통을 면면상계하여 왔다. 그러나 누차의 병화로 문헌이 실전되어 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신라 진덕왕 때의 군해 고려 충목왕때에 희양부사를 지낸 수로 이어져 왔으며 후손중에 선과 신 형제가 있었는데 선은 예의 판서를 지냈고 신은 우부사랑으로 공민왕15년에 이존오정추와 함께 신돈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봉성(김구)으로 폐출되어 그곳에 세거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51
시조 玉眞瑞(옥진서)는 고구려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파견된 8재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와서 국학의 교수가 되어 의춘(의령의 별호)군에 봉해지고 의령에 세거하면서 옥씨의 연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후 실전되어 고려 때 창정을 지낸 은종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의령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2(有유) 13(啓계) 14(應응) 15(成성) 16(敬경) 17(得득 炳병) 18(基기)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8
오씨는 문헌에 164본 또 210본이 나타나 있으나 16본을 제외한 148∼194본은 미고이다. 오씨 대동 종회에서 1962년에 편찬한에 의하면 모든 오씨의 도시조는 신라 22대 지증왕때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건너온 吳瞻(오첨)으로서 첨이 국명으로 다시 본국으로 건너 갔는데 그때 두 아들 중 둘째아들 웅은 그대로 함양에 남아 살았다고 한다. 그후 웅의 12대손 오광우가 다시 중국에 들어갔는데 그의 현손 오연총이 고려 문종 30년에 다시 우리나라에 건너와 정착세거함으로써 전국 오씨의 증시조가 된 셈이다. 그후 오연총의 6세손 수권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큰 아들 현보는 해주군에 봉해짐으로써 해주 오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아들 현좌는 동복군에 봉해짐으로써 동복오씨의 시조가 되었고 셋째아들 현필은 보성군에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7
시조 樂全(악전)은 고려 인종때에 문화찬성사로 부계(의흥의 고호)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부계라 하고 있다. (문헌상으로 본관이 의흥으로 되어 있으나 족보는 의흥의 고호 부계로 됨) 16(周주) 17(碩석) 18(秀수) 19(新신) 20(文문) 21(時시) 22(東동) 23(大대) 24(龍용) 25(鍾종) 26(海해) 27(秉병)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5
영씨는 평해와 강령(옹진군 백령면의 고호)의 2본이 있다. 그러나 시조는 알수 없고 다만 관향이 있을 뿐이다. 1930년 국세조사 때 단 1가구가 서울에 있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3
1975년 센서스에 의하면 영씨는 1가구로 집계 발표 되었으나, 영유성(서울)에 따르면 대구에 4촌동생이 인천에 8촌형이 살고 있으며 이밖에는 그의 일가가 평북 선천에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41
시조 태금룡은 발해국 진왕의 원손으로 고려 고종때 김교에서 몽고군을 격퇴하고 전승한 공으로 대장군에 오르고 영순(상주고호)군에 추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은 본관을 영순으로 하고 있다. 南原太氏(남원태씨) 남원태씨는 협계태씨의 분파이다. 태집성의 9세손 맹례가 단종때 진사로 화를 입어 함북 길주로 유배되었는데 후손들이 그곳에 세거하면서 맹례를 시조로 하고 조상의 본향인 남원을 본관으로 하였다. 25(相상) 26(煥환) 27(峻준) 28(錫석) 29(源원) 30(植식) 31(光광) 32(成성) 陜溪太氏(협계태씨) 시조 중상은 속미하에서 출생 천문, 지리와 병법에 능통하였으며 696년(신라효소왕5) 고구려의 유민을 이끌고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쪽에 진국을 건국하였다. 그후 10세손인 태광현은 발해가 망한 뒤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39
파주 염씨는 중국 황제의 후손으로서 헌원씨때는 공손씨라 하였으나 희수지방에 이거하면서 희씨로 개성했다. 그 후 희창의의 아들 전욱, 전욱의 증손이 대염씨라 했다가 다시 왕보씨로 개성했다. 그의 후손이 중국 하동에 이주하면서부터 염씨로 개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후 삼한공신으로 벼슬이 대사도(호조판서의 별칭)에 이르렀던 교명이 후당시(신라말기)에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 봉성(파주고호)에 들어와 잉거하게 됨으로써 염씨의 동래 시조가 되었고 그의 후손인 제신(시호 충경)은 1304년(고려 충렬왕30)에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1세 때 원나라에 들어가 고모부 말길(관직평장사)의 집에서 10년 동안 수확하고 정동 성랑중이 되었다가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하여 환국한 후 충목왕때 수성익재공신으로 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