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5
위씨는 본래 중국의 팽씨의 후예로서 당나라때에 대단한 성세를 보인 성씨이다. 당의 제4대 중종 황제의 황후를 비롯하여 문장가 정치가들을 무수히 배출한바 있다. 시조 수여는 960년(고려광종11) 중원에서 래조하여 사선관이 되었고 7대 목종 때는 문하시랑 평장사가 되었으며 8대 현종 2년에 노령으로 치사코자 하였으나 허락되지 않고 오히려 궤장을 하사받았다. 익년 문화시중 상주국 강화현 개국백을 제수받고 강화를 식읍으로 하사하니 이로 인해 강화를 본관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는 현종3년 4월에 죽었으며 시호를 안공이라 하였고 내사령에 추증되었다. 향사일은 10월9일로 묘소는 강화군 강화읍에 있다. 그러나 그후 세계가 실전되어 조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위씨는 단일본이다. 13(昌창) 14(棟..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4
주나라 성왕의 근친에 원훤이 있었는데 그의 본성은 희씨였으나 성왕이 원으로 사성하고 위나라 대부를 봉하니 이로써 중국에서의 원성이 비롯된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진한에서 신라로 상계 입상한 원훈 원훤의 두 원성이 삼국사기에 로현되었으나 원훤과 관련이 있는지는 고증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원훤은 거금 약 3000년전 사람이며 원훈 원훤은 약 2000년전 사람으로 그들이 동래한 원훤의 후손일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뒤로 당나라 태종 때에 8학사 중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온 원경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가 우리나라 원씨의 도시조인 듯 하다. 그런데 원씨계보 중에서 경을 시조로 하는 옹암 운곡계는 계대가 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계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씨는 관향이 원주 단본으로 그중..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3
조선씨족계보에 의하면 원씨는 중국의 성씨로서 진나라 공자 원도수의 후손이다. 원래는 원씨였는데 차를 떼어버리고 원으로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씨는 비옥(비안의 별호) 단본으로 그 시조는 뢰보이다. 그러나 선조의 선계나 사적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198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충남 아산에 17가구를 비롯하여 전국에 21가구가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2
운씨는 본래 중국의 성씨이며 수양제 때 운정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청주, 장흥, 함흥의 3본이 있는데 모두가 시조를 알 수 없고 다만 관향이 있을 뿐이다. 1930년 국세조사 때는 경기도 강화군에 8가구가 살고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200여년 전에 육지에서 낙혼한 조상들이 하늘에 떠도는 뭉게 구름을 보고 운씨로 개성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혹은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후손들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1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운씨는 전주 단본이며 시조는 알 수 없다고 했다. 1930년 국세조사에는 함남의 함주, 안변, 함흥 등지에 도합 11가구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씨는 본래 중국의 성씨로서 주나라 무왕의 아들이 땅에 봉해짐으로써 「邑」를 떼고 于氏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우씨는 목천우씨는 목천우씨 단본으로 그 시조는 고려 인종 의종 연간에 상서좌복사를 지낸 나녕이다. 그리고 1930년 국세조사에 나타난 것을 보면 경북 성주의 19가구를 비롯하여 전국에 40여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0:30
우씨의 선세계는 중국 하나라 우왕의 후예이다. 연대가 유원하고 문헌이 없으므로 계대를 상고할 수 없으나 원손 우현이 고려때 동래하여 단양에 세거하면서 1014년(현종5) 진사로문과에 급제하여 정조호장을 지냈고 문하시중평장사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그의 10세손 현보가 공양왕때 삼사사를 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이라 하여 계세하고 있다. 26(榮영) 27(鼎정) 28(命명) 29(鍾종) 30(濟제) 31(植식) 32(熙희) 33(喆철) 34(鎔용) 35(洙수) 36(柄병) 37(燮섭) 38(在재) 39(鎬호) 40(永영) 41(根근) 42(炅경) 43(均균) 44(鎭진) 45(淳순)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2:00
시조 득의는 1208년(고려 희종4)에 시어사를 지냈고 1241년(고종28) 문하시중을 거처 1271년(원종12)에 통어사를 지냈으며 만년에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용수사를 창건했다. 한편 학서루를 건립하여 이에 우거했다. 그의 후손이 그곳에 정착 세거 함으로써 본관을 홍천이라 하였다. 향사일은 매년 10월1일이다. 26(文문) 27(永영) 28(植식) 29(煥환) 30(重중) 31(錫석 鎬호) 32(淳순) 33(相상) 34(榮영) 35(在재) 36(鎭진) 37(演연) 38(模모) 39(燉돈) 40(均균) 41(鉉현) 42(源원) 43(秉병) 44(燮섭) 45(준)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59
요씨는 본시 중국의 성씨로 한제 때의 현도 태수 요광 당나라 소종때의 한림박사 요계등이 문헌상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 원년에 물장경이 된 인휘가 있으나 오늘날의 요씨와 djEJs 관계인지는 상고할 수 없다. 관향은 휘주, 수원, 충주, 서원(청주별호)의 4본이 있으나 그 시조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1930년 국세조사때 함북 성진의 6가구등 10여가구가 모두 이북에 산거하고 있었다. 성진의 6가구는 휘주요씨로 300여년전 병난을 피하여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후예라고 한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58
왕씨는 문헌에 15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여기서는 고려조의 왕족인 개성 왕씨와 성은 같으나 근본이 다른 제남왕씨로 크게 나누어 다루었으며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미고이다. 개성왕씨는 고려 500년 동안 번영을 누려왔으나 이태조가 조선을 창업하면서 멸문지화를 당해 숱한 왜화와 비극을 남기고 몰락해 갔다. 이러한 환란중에 도생지책으로 변성하여 타성으로 행세하던 왕씨들이 다시 환적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거의 환적하여 다시 왕씨 일문을 이루고 있다. 開城王氏(개성왕씨) 중국 황제 헌원씨의 17세손 조명은 유누와 함께 동래하여 지금의 평양 일토산하에 정착하였다. 그후 조명의 후손 수극은 기자가 왕이 되었을 때 사사가 되었고 왕씨로 사성 받았다 한다. 그후 수극의 12세손 贄(지), 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