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07
안씨는 문헌상에 10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6본을 제외한 나머지 103본은 미고이다. 안씨의 본성은 이씨로서 806년(신라 애장왕7)에 당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개성의 송악산하에 정착한 이원의 아들 3형제가 864년(신라 경문왕4)에 왜구를 평정한 공으로 안씨를 사성받았고 큰 아들 지춘은 방준으로, 둘째아들 엽춘은 방걸로, 셋째 아들 화춘은 방협으로 각각 개명하였다 한다. 그리고 방준은 죽산군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은 죽산 안씨가 되고 방걸은 광주군에 봉해짐으로써 광주안씨가 되었다. 순흥안씨는 자미를 시조로 하였고 신죽산안씨와 탐진안씨는 순흥안씨에서 분관되었다. 또한 위의 안씨들과 세계를 달리하는 태원안씨가 있다. 廣州安氏(광주안씨) 시조 방걸(광주군)은 고려 태조때 광주 사람들이 성주를 살해하고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04
권씨는 문헌에 56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안동 예천 2본을 제외하고 54본에 대하여는 미상이다. 안동권씨 시조 權幸(권행)은 원래는 신라 종성인 김행이었다. 고려창업에 수훈을 세우고 하다는 뜻으로 권성을 하사받아 권행으로 되었고 예천권씨는 원래의 성은 昕(흔)씨 였는데 고려 충목왕의 휘가 흔이여서 국휘를 범한다 하여 나라에서 외가의 성을 따르게 했다. 예천권씨의 시조 권 의 부 흔승단은 안동권씨 권백서의 사위임으로 모성을 따라 개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安東權氏(안동권씨) 시조 權幸(行)(권행)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의 견훤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고 김선평 장정필과 함께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고려 태조가 이 세사람에게 삼한벽상아부공신으로 삼중대광택사의 벼슬을 내렸다. 특히 김행에게는 이..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03
삼국유사등 문헌에 역사적인 인물이 보인다. 백제사람으로 신라에 가성 황룡사 구층탑을 세운 아비지, 일본에 한학을 전한 아직기 등이 있는데 이들의 성이 아씨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고려가 착업되기전 아자개가 있으나 이는 견훤의 아버지로 본성은 이씨이다. 1930년 국세조사때 전남에 20여 가구 경남에 9가구등이 모두 35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01
심씨는 문헌에 63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4본을 제외한 나머지 59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라, 심씨는 이조 500년 동안 정계를 주름잡은 10대 문벌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심씨 중에서도 청송 심씨는 상신이 13명이나 되는데 그중 영의정이 9명이나 되어 전주이씨의 영의정 11명에 비해 버금가는 것이다. 그리고 심온 심회는 부자 영상인데 심온의 부 심덕부를 넣으면 삼대가 상신을 지낸 셈이다. 역사상 3대가 상신이 된 집안은 대구서씨, 청풍김씨와 함께 단 세 집뿐이다. 三陟沈氏(삼척심씨) 시조 동노의 선세계는 고려 숙종때에 좌승선과 군기소감을 역임한 후와 문림랑과 군기주부를 역임한 적충등으로서 그들은 삼척에서 토착하여 세거하였으나 문헌이 실전되었고 후손인 동로가 고려조에 중서사인 예부판서 집현전학사를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1:00
신씨는 문헌에 155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고령, 아주, 평산 3본을 제외한 152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신씨 가운데 평산신씨는 전체 신씨의 70%이상을 차지하고 고령신씨가 20%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신씨는 이조때 대표적인 명벌의 하나로서 고령신씨는 이조 전반기에 평산신씨는 이조 후반기에 크게 세를 떨쳤다. 그리고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은 고려 왕건태조의 익재공신으로 공산동수에서 태조의 위급을 구출코자 대신 전사, 죽음을 애통히 여긴 태조는 달성군 공산면에 지묘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했다고 한다. 高靈申氏(고령신씨) 시조 성용(成用)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검교 군기감을 역임했다. 성용의 선계는 신라의 공족으로 누대 고령에 세거하면서 호장을 지내왔으므로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고령으로 하여 세계를..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0:57
시조 修(수)의 선세계는 중국개봉부인이다. 그는 고려 문종때 래조하여 벼슬은 수사도, 좌복사, 참지정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거창에 세거하였다. 그런데 아들 안지는 지수주사가 되어 수원신씨라고 한 기사가 있으나 그후 거창에 세거함으로써 그의 후손들은 본관을 거창이라고 하고 수를 시조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26(輔보) 27(九구) 28(炳병) 29(宗종) 30(성) 31(範범) 32(鏞용) 33(宰재) 34(重중) 35(揆규) 36(澤택) 37(相상) 38(煥환) 39(基기) 40(鎬호) 41(泳영) 42(根근) 43(然연) 44(圭규) 45(鉉현) 46(源원) 47(東동) 48(榮영) 49(載재)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0:54
절강시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춘추시대의 시백으로부터 시작되어 그후 중국의 명벌로 손꼽혀 왔다. 우리나라에 귀화한 것은 1592년(선조 25)의 일로 명나라 무장으로서 임진왜란 때 행영중군이 되어 원군으로 왔던 시문용(호:명초)이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명나라 군사가 철수할 때 병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성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손들은 문용을 중조1세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으며 원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문용은 무예에 뛰어나고 문장에도 능했고, 1741년(영조17) 병조참의 훌련도정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북 성주 남흑수방 칠령 흑방동좌이다. 9(錫석) 10(潤윤) 11(植식) 12(炳병) 13(奎규 基기 埈준) 14(鎭진 鍾종) 15(淵연)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20:51
시씨는 중국 고대의 고산씨의 후예라 하나 언제 우리나라에 와서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않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사씨는 고려 현종때 흥화진두를 지낸 식운이다. 1930년 국세조사 통계에 의하면 정읍, 임실 등 전북에 94가구가 살고 기타 지역에 10여 가구가 되어있다. 현재도 정읍 태인 등지에 집단부락을 형성해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태인, 금화 2본이며 농향을 본관으로 하는 시씨가 있으나 이는 태인의 지방명임을 생각하면 한 분파일 것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13
에 따르면 시조는 명승이다. 그의 선대는 중국의 황족이었으며 고려 공민왕때 그의 어머니와 더불어 망명 귀화했다. 그는 망국왕족으로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명자를 버리고 승자로 개성하였다하며 자손에게 유언하여 벼슬길에 일체 나가지 않게 했다. 그의 어머니 옥경화는 우리나라 전래의 신라예복(원삼 족두리)을 보급 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고종때 호조참판에 추증된 승봉운이 있다. 승씨와 명씨는 동근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통혼을 않는다고 한다. 주요 본관은 창평과 남원이며 분포는 나주, 화순, 서흥, 김천, 창원, 김해 등지에 약 80가구가 살고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12
1930년 국세조사 때 평남 령원군 2가구 함북 경성군에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