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18
진씨는 문헌에 47본으로 나타나 있다. 진씨는 공자의 제자로서 문묘에 배향된 상을 시조로 진욱이 고려조에 박사로서 진주군에 봉해짐으로써 본관을 진주로한 진주진씨와 신라의 원병으로 백제평정에 참가했다가 귀화한 필명을 시조로 하는 풍기진씨를 제외한 45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晋州秦氏(진주진씨) 진씨는 전체의 후예이다. 백익이 순제로부터 영씨를 사성받았고 그의 후손 비자가 진이라는 고을에 봉해졌으므로 이로써 성을 삼으니 이에 진성의 시조가 되었으며 시조 진상은 공자의 제자로서 우리나라 문묘에 배향되었다. 진상의 76세손인 욱이 고려조에 박사보리공신 이었으며 진주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진주로 본관을 삼았다. 욱의 제2자인 계백은 고려 공민왕조에 찬성사로서 홍윤, 최만성 등과 정사를 의존하다가 마침내 그들이..
진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송나라때 복주출신인 진수가 우윤 벼슬을 지내다 국난이 일어나자 우리나라에 건너와 려양현(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 정착세거 하였는데 그의 후손인 총후가 비로소 고려 예종때 벼슬이 신호위대 장군에 이르고 인종때 이자겸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려양군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총후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려양으로 하게 되었다. 그외에 삼척, 나주, 강릉을 본관으로 한 진씨가 있으나 이미 려양진씨 대동보에 환보하여 려양진씨로 일원화 되었고 진산 광동을 본관으로 한 진씨는 려양진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고증할만한 문헌이 없어 자세하게 알수가 없다. 그외에도 120여 본관이 문헌상에 나타나 있으나 이또한 미고이다. 24(夏하) 25(成성) 26(範범 熙희) 27(庸용 廣광..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17
조선 씨족 통보에 의하면 진씨는 백제 8대성의 하나였고 중국에서는 상곡이 진씨의 발상지이며 송나라 영종때에 진덕수라는 사람이 있었다고한다. 또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에도 이미 진공(신문왕조 대아손) 진복(신문왕조 상대등)이 있고 백제에는 진가(고이왕조 좌평) 진무(아신왕 국구 병관좌평)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진씨는 본관이 서산 하나 뿐이며 그 시조나 상계를 상고할 수가 없고 천여명 밖에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