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씨(文氏)


문씨는 문헌에 131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남평, 감천, 정선 3본을 제외한 128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감천 문씨의 시조 문원길의 선대에서 중국에 들어갔다가 문자응로 이름을 날려 문성을 사성받아 문씨로 개성했다 한다. 남평문씨는 신라 20대 자비왕 때의 사람인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다성의 출생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남 나주군 남평면 동쪽에 장자지란 큰 못이 있고 그 못가에는 큰 바위가 솟아 있다. 하루는 당시의 도주가 그 바위 아래에서 놀고 있는데 그 바위 위에서 갑자기 오운이 감돌면서 문득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이상히 여긴 군주는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석함이 놓여 있는데 그 속에는 피부가 백설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 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에 그 군주가 거두어 기르니 나이가 불과 5세에 문사에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이 뛰어날 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 총기가 있는지라 문을 성으로 삼게 하고 이름을 다성이라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전남 나주군 남평면 소재지에는 동쪽으로 3마장쯤 가면 장자지라 불리는 큰못이 있고 그곁에는 우뚝 솟은 바위가 있어 남평 문씨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바위 높이는 6미터쯤 되는데 바위 위에는 그 후손들이 문암이라는 비석을 세워 놓아 문씨의 시조의 탄강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곳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장자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고 못가에 있는 문다성을 모신 장연서원에서 매년 음9월에 향사한다. 정선문씨의 시조 문림간은 본래 전씨였는데 중국에 들어가 문명을 날리므로써 문성을 사성받고 문씨로 개성했다한다.

 

甘泉文氏(감천문씨)

 

감천 문씨의 선대는 본래 경주 김씨였는데 중국에 들어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쳐 문씨로 사성받아 개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대에 무자하여 경북 영주에 살고 있는 외손이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南平文氏(남평문씨)

 

시조 다성(자: 명원, 호: 삼광, 시호: 무성)은 472년(신라자비왕15) 2월에 남평현 동쪽 장자지에서 자색의 서기가 있어 왕이 현주를 시켜 가보게 했더니 대암위에 석함이 있고 그속에 아이가 있었는데 함면에 『문』자가 씌어 있어서 문씨로 사성하였다고 한다. 그후 500년(지증왕1) 중시아랑이 되고 540년(진흥왕1) 대국사 577년(진지왕2) 대아랑대국사가 되어 식읍 3000호를 받았다. 대광보국상주국삼한벽 상공신대사마대장군태사태전에 추증되고 남평개국백에 추봉되었다. 묘소는 전남 나주군 남평면 덕용산 능사동에 있었다고 전하나 실전 전남 나주군 남평의 장연서원에서 매년 음9월에 향사한다.

 

<행 렬 자>

32(鎬호 鉉현 欽흠) 33(濟제 承승 鴻홍) 34(植식 模모 相상) 35(熙희 炯형 炳병) 36(周주 基기 均균) 37(鍾종 鎔용 동) 38(泳영 洙수 洽흡) 39(東동 學학 桓환) 40(魯노 燮섭 勳훈) 41(在재 時시 圭규) 42(銑선 鎰일 錫석) 43(澤택 泰태 海해) 44(杓표 根근 穆목)

 

旌善文氏(정선문씨)

 

정선 문씨의 시조 임간은 본래 전씨였는데 중국에 들어 갔다가 문장으로 이름을 날려 문성을 사성받아 문씨로 개성했다고 하며 귀국 후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른 것으로 전한다. 그렇다면정선 문씨는 정선 전씨의 분종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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