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魯氏)


노씨는 문헌에 64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본서에는 강화, 광주, 함평, 밀양 등 4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관에 대하여는 미상이다. 노씨는 본래 중국 주 나라 때 백리가 노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이 노를 성씨로 삼게되었다 한다. 강화 노씨는 고려 명종때 이부상서를 지낸 노용신을 시조로 하고 광주노씨는 노필상을 시조로 하며 밀양노씨는 노중연을, 함평노씨는 노목을 시조로 하여 각각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江華魯氏(강화노씨)

 

시조 용신(시호 충양)의 선세계는 주나라 백리의 왼손으로 고려 고종때 강화현령으로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강화 천도에 공을 세워 강화군에 봉해지고 토지를 하사 받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강화에 정착 세거 하면서 본관을 강화라 하였다.

 

53(仁인) 54(誠성) 55(柱주) 56(參삼) 57(碩석) 58(文문) 59(走주) 60(博박) 61(曾증)

 

 

密陽魯氏(밀양노씨)

 

주무왕의 아우 주공단이 곡부에 봉해져 노를 창건하였고 뒤에 그 아들 백리에게 물려 주었으며 노나라가 망한 뒤에 후손들이 나라 이름을 따서 노씨라고 했다. 시조 노중연은 주나라 사람으로 진시왕을 수출하는데 공이 컸으며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을 때 그의 손자 계가 시신으로 따라와 정착 세거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원손인 형권이 공민왕때 공조판서로서 홍건적을 토평한 공으로 밀산(밀양의 고호)군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이 그를 기일세하여 본관을 밀양으로 삼았다.

 

<행 렬 자>

21(箕기) 22(熙희) 23(培배) 24(鎭진) 25(潤윤) 26(業업) 27(炳병) 28(周주) 29(錫석) 30(演연) 31(榮영) 32(燁엽) 33(在재) 34(鉉현)

 

 

咸平魯氏(함평노씨)

 

시조 목의 선세계는 기자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온 계라고 하나 문헌이 실전되어 혈연계보를 상고할 수 없다. 목(시호 문충)은  고려 인조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평난공신으로 함풍(함평의 고호)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함평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9(甲갑 萬만 用용 鍾종 輔보) 30(乙을 九구 旭욱 允윤 完완) 31(丙병 會회 禹우 南남 雨우) 32(丁정 宇우 行행 寧녕 衍연) 33(戊무 義의 載재 咸함 茂무) 34(己기 選선 起기 熙희 範범) 35(庚경 康강 庸용 庠양 度도) 36(辛신 宰재 章장 澤택 新신) 37(壬임 聖성 廷정 重중 勳훈) 38(癸계 揆규 天천 泰태 澄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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