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5:25
대홍, 전주 두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홍필씨는 무과에 급제한 필몽량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후손에 정조때 문과에 급제 성균관사성을 지낸 필성뢰가 있는데 대대로 함흥에 산 것으로 되어 있다. 1930년 국세조사때 모두 73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그중 65가구가 함주, 영흥, 신흥 등 북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5:24
피씨는 문헌에 30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피위종을 시조로 하는 홍천피씨와 피득창을 시조로 하는 괴산피씨 이외의 28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槐山皮氏(괴산피씨) 괴산피씨는 홍천피씨에서 분적되었다. 따라서 시조 피득창 이전의 세계는 홍천피씨와 같다. 그는 조선개국 공신으로 병조판서, 전라감사를 역임하고 괴산에 세거하여 후손들이 괴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16(景경) 17(예) 18(鳳봉) 19(浩호) 20(相상) 21(燦찬) 洪川皮氏(홍천피씨) 피씨는 주나라때 경사인 번중피의 제일 아랫자인 피를 따서 성을 삼았다 한다. 그 뒤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에서 금오위상장을 역임한 피위종이 귀화 병부시랑을 역임하고 좌사에 대부에 추증되었다. 그의 아들 인선이 정당문학, 좌복사를 지내고 홍천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홍..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5:23
시조 풍삼사는 중국 산동성 임구현인으로 선세계는 주나라 문공의 15자 필교가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위나라 후가 되어 풍성을 식읍으로 받아 성을 풍씨라 하였다. 그는 명나라 태학으로 1645년(인조23) 봉림대군(효종)과 같이 심양에서 명나라 광복을 도모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9의사와 같이 래조하여 정착세거하면서 본향인 임구를 본관으로 하였다. 묘소는 양주군 구리면 양노리에 있다. 13(鉉현) 14(永영) 15(杓표) 16(炳병) 17(均균) 18(鍾종) 19(洙수) 20(棕종) 21(熙희) 22(瑛영) 23(鏞용) 24(源원) 25(本본) 26(夏하) 27(培배) 28(鎔용) 29(求구) 30(華화) 31(煥환) 32(珖광) 33(鈺옥) 34(濟제) 35(彬빈) 36(容용) 37(基기) 38(鍊련)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5:22
표씨는 문헌에는 37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현재 신창 단본이다. 신창표씨의 시조 표대박은 오계시대에 후주의 이부상서로 있다가 장, 방, 위, 변, 윤, 진, 감 황보 등 8성을 이끌고 황해를 건너 960년(광종11) 고려에 들어와 귀화했다. 그러나 그후 실전되어 소목계통을 밝힐 수 없어 그 후손 인여를 중시조로 하고 중시조 인여가 고려 충숙왕때 합문기후를 지내고 좌리공신으로서 신창백에 봉해져 본관을 신창으로 하고 있다. 11(道도) 12(萬만) 13(德덕) 14(碩석) 15(天천) 16(義의) 17(珍진) 18(淵연) 19(宗종) 20(鶴학) 21(在재) 22(鍾종) 23(永영) 24(植식)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5:21
옛문헌에 나타나지 않던 성으로 1930년 국세조사때 경남에 1가구가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5:20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알려지고 있으며 1930년 국세조사때 순천, 맹산, 성천 등 20여가구가 모두 이북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풍덕 순천등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42
평씨는 원래 중국성씨로서 한나라 성제때에 평당이라는 사람이 있어 처음으로 식읍명(평릉)으로 성을 삼아 평성이 생겼다고 한다. 평씨가 어느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씨족통보에는 충주를 비롯하여 선평, 인천, 예산, 가흥(진도속현) 평원(원주 별호) 등 6본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충주 단본으로 알려져 있다. 충주평씨의 시조 평우성은 이조 선조때 사람으로 그의 사적에 대하여는 전하는 바가 없다. 그리고 931년(고려태조14) 평환이라는 사람이 강덕진두가 되었는데 현재의 평씨와 어떤 관계인지 상고할 길이 없다. 충주 평씨의 시조 평우성의 묘소는 경기도 인천시 남구 서창동 앞산에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41
1930년 국세조사때 충북 옥천에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성씨이다.
시조 편석용은 명나라 신종때 사람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군이 되어 래원했다. 그의 선세계는 절강사람으로 고조편지는 명조에 태자태사를 역임했고 증조 편일은 절강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편석용은 그후 경주에 은거하여 세거하였다. 후손들이 원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삼고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6(在재 茂무) 17(鉉현 範범) 18(海해 度도) 19(植식 章장) 20(炳병 聖성) 21(埈준 承승) 22(鎬호 甲갑) 23(演연 勉면)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30. 13:39
팽씨는 문헌에 7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팽적을 시조로 하는 용강팽씨와 팽우덕을 시조로 하는 절강팽씨를 제외한 나머지 5본에 대하여는 미고이다. 龍岡彭氏(용강팽씨) 시조 팽적은 원래 중국 금릉인으로 1351년(고려충정왕3) 노국공주가 공민왕과 결혼 입국시 내각학사로 호종 동래하여 고려조에 용강백에 봉해져 시조가 되고 본관을 용강으로 하였다. 16(潤윤) 17(根근) 18(爀혁) 19(周주) 20(軫진) 21(源원) 22(柱주) 23(熙희) 浙江彭氏(절강팽씨) 시조 팽우덕은 본래 중국 절강인으로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중군 부총병서로서 동원장사로 뽑힌 아들 신고와 함께 우리나라에 나와 공을 세우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아들 신고가 명나라 의종의 순사지복이었으므로 명나라가 망할 때 그의 손자 부산이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