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성온씨(溫氏(鳳城))


당나라와 진나라를 통합한 숙우의 12세손 소후가 아우 수를 온에 봉하니 국호를 온이라 하고 도읍을 평원에 정하였다. 그후 온국의 공자장이 국명을 따라서 성으로 삼으니 이로부터 온씨의 연원이 이루어졌다. 그후 세원하고 고증이 없어 세계를 상고할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서 온씨의 시원은 고구려의 평원왕 때 온달이 평강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고 그로부터 온씨 혈통을 면면상계하여 왔다. 그러나 누차의 병화로 문헌이 실전되어 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신라 진덕왕 때의 군해 고려 충목왕때에 희양부사를 지낸 수로 이어져 왔으며 후손중에 선과 신 형제가 있었는데 선은 예의 판서를 지냈고 신은 우부사랑으로 공민왕15년에 이존오정추와 함께 신돈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봉성(김구)으로 폐출되어 그곳에 세거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봉성이라 하였다. 그리고 후손들이 각기 세거에 따라 분관하였으니 신의 7세손 효진이 북청주(북청)에 세거하면서 청주로 분관하였으나 호적의 오기로 청주로 되었고 경주온씨는 선의 후손과 신의 14세손 희영이 경주에서 세거하면서 경주로 분관하였다. 그 외에 성씨대관이나 다른 문헌에는 단양온씨, 온양온씨 등이 있다고 전하나 모두 같은 혈손이므로 온달을 도시조로 하고 봉성온씨로 환적하여 온씨 중앙 종친회를 구성 대동보 편찬을 추진하고 있다.

 

<행 렬 자>

 

(처사공파)

21(鉉현 樂락) 22(堯요 燮섭) 23(鎬호 基기) 24(漢한 銀은) 25(柱주 운) 26(熙희 柾정)

 

(생원공파)

21(和화) 22(焄훈) 23(在재) 24(鏞용) 25(泳영) 26(校교)

 

(진사공파)

21(載재 圭규) 22(鍾종 鉉현) 23(泳영 泰태) 24(權권 杞기) 25(炳병 炯형) 26(培배 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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