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03
소씨(蘇氏)는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단본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진주를 비롯하여 진강·충주·능주·익산·조양 등 12개의 본관이 전해지고 있으나, 이는 모두 진주소씨의 분파 세거지를 이르는 것으로 본다. 『진주소씨세보(晉州蘇氏世譜)』에 의하면 오방신장(五方申將)의 하나인 적제(赤帝)의 61세손 태하공(太夏公) 풍(豊)이 기성(己姓)을 소(蘇)로 바꾸어 소씨가 비롯되었다. 태하공의 69세손인 진공(辰公) 소백손(蘇伯孫)이 경주로 옮겨 후진한주(後辰翰主)가 되고 그 뒤 27대 동안 살았다. 신라 6촌의 하나인 고허촌의 촌장 소벌(蘇伐)이 진공의 5세손이라 한다. 시조인 소경(蘇慶)은 진공의 29세손으로 상대등이 되어 경신년 봄 3월 2일에 진주의 도사곡(塗斯谷)으로 옮겼다. 소씨가 진주를 관향..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02
성씨는 원래 중국 성씨로 주나라 문왕의 제7자 성 숙부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자손이 나나라 명「성」으로 명씨를 삼았는데 뒤에 초나라에 망하자 읍변을 떼 버리고 성씨라하였다 한다. 그후 당나라 때 학사 경이가 우리 나라로 건너 왔으며 뒤에 백제에 충이 있었고 신라에 저가 있어 두 사람이 다 절의와 벼슬이 당당하였다. 그러나 경이와 충은 창녕 성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상고할 수 없고 창녕성씨보에는 시조 인보의 아버지는 숙생이요 신라 대관 저의 후예라 하였다. 시조 인보는 창녕에 누대 세거한 호족이며 또 그곳에서 호장중윤을 지냈다. 삼국 말기에는 호걸이 각주군에 할거하고 있어 고려 태조는 관원을 파견하여 이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당시 장민자를 호장이라하고 장병자는 장교라고 하였다. 그 후손들도 창녕에 정착거..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7:00
옛 문헌에 보이지 않던 성씨로 1930년 국세 조사 때 비로소 1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섭씨는 1012년 고려 현종 때 송나라로부터 귀화하여 문종 때 승지를 지낸 섭성이 있는데 섭씨는 이들의 후손인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의 인물로는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전적을 지낸 천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천안 아산등 충남에 20가구 와 전남 장성의 10가구등 모두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주요 본관은 공촌(수원) 처인, 회미, 인의, 해평, 니파산, 평해 등이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9
설씨는 문헌에 23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경주 순창 2본 이외의 본관에 대해서는 미고이다.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의 원조는 다같이 신라 6촌 가운데 명활산 고야촌 습비부장으로 전해진 호진(일명거백)이며 유리왕 때 다른 촌장들과 함께 설씨로 사성 받았다. 그리고 2본으로 나뉘어 있으나 본래 원호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 태어난 빙우러당 설총의 후예이다. 慶州薛氏(경주설씨) 순창 설씨와 동원이다. 시조 支德(지덕)의 후손으로 습비부가 경주에 속하므로 본관을 경주로 하였다가 자승이 순화백에 봉해짐으로써 순창으로 이관하였으나 귀창을 파조로 하는 개성파는 종전대로 경주를 본관으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41(基기) 42(鎭진) 43(源원) 44(杓표) 45(烈열) 46(在재) 47(鉉현) 48(澤택) 49(植식) 50(..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8
시조 孫(손)(호:근사제)의 선세계는 회골인으로 설연하에 세거하면서 성을 설이라 하고 원나라에 귀화하여 대대로 벼슬을 지낸 가문으로 태전 극직의 8세손이다. 그는 학문이 깊고 문장에 뛰어난 시인으로 1358년(공민왕7) 홍건적의 난을 피해 망명 귀화하니 그를 부원후에 봉하고 식읍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 장수(시호 문정)가 경주로 사관되어 후손들이 본관을 경주라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16(遇우) 17(興흥) 18(之지) 19(泓홍) 20(殷은) 21(漢한) 22(左좌) 23(德덕) 24(淳순) 25(錫석) 26(源원) 27(秉병) 28(煥환) 29(在재) 30(鎬호)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6
우리나라 선우씨의 성원은 기자가 기자조선 세우고 그의 장자 송이 2대 장혜왕으로 즉위 하면서 아우 중을 우산국에 봉하여 나라를 세우게 하였으므로 조선과 우산국에 있는 자손들이 조선의 「선」과 우산의 「우」 2자를 취하여 다같이 선우라고 성을 삼았고 본관을 태원이라고 함으로써 비롯 되었다. 그 뒤에 41대왕 애왕(준)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천하여 금산군(현익산)에 마한을 세웠는데 10대 계왕에 이르러 백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그때 원왕에게 아들 3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량이 용강 오석산으로 들어가 황용국을 세우고, 왕으로 즉위하여 선우씨의 세계를 이어왔고, 하나는 청주한씨 하나는 행주기씨가 되었다. 량의 10세손 병에 이르러 나라를 고구려에 빼앗기고 서민으로 태원선우씨의 세계를 이어 왔으나 고증과 ..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5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로 당시 서울 1가구 경흥에 1가구 도합 2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무천거사 2010. 3. 29. 16:54
에 의하면 보성 선씨의 시조 선윤지(호: 퇴유당)는 중국 노나라 대부선백의 후손으로 명나라때 문연각 학사로서 1382년(우왕8)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귀화 전라도 안염사가 되어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우거하는 도이를 격퇴하고 민심을 안정 시켰으며 유교의 발전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후 조선이 개국되자 절의를 지키고 보성에 은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보성으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그리고 동성동본으로 고려말에 예의판서 우문각 대제학 등을 지내고 조선개국 후에 보성 백이산 남록도촌방으로 은거한 선원지를 시조로 하는 또한 계통이 있으나 같은 혈손으로서 곤계 관계는 분명하지 않으나 양파사이에 합보를 하였다. 21(圭규 錫석 鎬호 泳영) 22(鍾종 泰태 永영 相상) 23(浩호 來래 柱주 炳병) 24(東동 容용 ..
시조 載興(재흥)의 선세계는 신라 4대 임금 석탈해니사금의 23세손이다. 석씨는 신라 56왕중 8왕(석탈해 벌휴왕, 나해왕, 조세왕, 첨해왕, 유례왕, 기임왕, 흘해왕)이 즉위 했으며 삼국사기에 석탈해의 탄생 및 명명신화가 전하고 있으나 이는 생략한다. 재흥은 고려조에 시랑을 지냈으며 후손들은 그를 시조(1세)로 하고 본관을 월성(경주의 고호)으로 하였다. 38(基기) 39(鎭진) 40(河하) 41(東동) 42(榮영) 43(圭규) 44(鎬호) 45(準준) 46(植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