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천상씨(尙氏(木川))


시조 國珍(국진)은 원래 백제의 유민으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이에 불복하고 당시의 목천현 상왕산(확성산) 아래 웅거하여 누차에 걸쳐 백제의 국권회복을 위해 항쟁하였으므로 고려 조정에서는 그를 미워하고 축성「象」을 주었다. 그후 그의 아들 득유가 1060년(문종14)최충이 설치한 시빙제의 학사가 됨으로부터 향역을 면함과 동시에 원성 「尙」을 회복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선대의 근거지였던 목천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이다. 묘소는 상왕산하 간좌에 있으며 향사일은 음 10월 3일이다.

<행 렬 자>

 

15(子자) 16(詹첨) 17(周주) 18(사) 19(澤택) 20(東동) 21(容용) 22(致치) 23(鉉현) 24(水수) 25(植식) 26(炳병) 27(圭규) 28(義의) 29(淙종 澈철) 30(柱주 정) 31(熙희 烈열) 32(珉민 培배) 33(鏞용 鎬호) 34(漢한 演연) 35(桓환 秀수) 36(炫현 惟유) 37(載재 瑛영) 38(鎭진 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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