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吳氏)


오씨는 문헌에 164본 또 210본이 나타나 있으나 16본을 제외한 148∼194본은 미고이다. 오씨 대동 종회에서 1962년에 편찬한<오씨 대동보>에 의하면 모든 오씨의 도시조는 신라 22대 지증왕때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건너온 吳瞻(오첨)으로서 첨이 국명으로 다시 본국으로 건너 갔는데 그때 두 아들 중 둘째아들 웅은 그대로 함양에 남아 살았다고 한다. 그후 웅의 12대손 오광우가 다시 중국에 들어갔는데 그의 현손 오연총이 고려 문종 30년에 다시 우리나라에 건너와 정착세거함으로써 전국 오씨의 증시조가 된 셈이다. 그후 오연총의 6세손 수권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큰 아들 현보는 해주군에 봉해짐으로써 해주 오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아들 현좌는 동복군에 봉해짐으로써 동복오씨의 시조가 되었고 셋째아들 현필은 보성군에 봉해짐으로써 보성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나주, 울산, 락안, 고창, 함평 평해오씨는 해주오씨에서 분관 되었으며 군위오씨는 동복오씨 화순, 함양, 장흥 흥양오씨는 보성오씨에서 각각 분관되었다고 한다. 오씨인구는 1960년 현재 12위에 해당한 대성으로 손꼽히고 있다.

 

高敞吳氏(고창오씨)

 

시조 학인은 비조첨의 17세 손으로 1035년 (정종1)문과에 급제하고 1057년(문종11)에 사목으로 입강에서 북쪽 오랑캐를 토평한 공으로 고창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그러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고창으로 하였다. 벼슬은 한림학사에 이르렀고 시문에 정통했다. 고창의 향현사 평산의 죽림사에 제향.

 

軍威吳氏(군위오씨)

 

시조 오숙귀는 선조 첨의 24세손 현좌(동복오씨 시조)의 제2자로서 고려조에 벼슬 하면서 비안군에 봉해졌고 그후 6세손 인철이 고려조에서 사복을 지냈다. 후손들은 군위에 세거하면서 동복오씨에서 분적 숙귀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군위로 하여 계세하고 있다.

 

<행 렬 자>

 

14(時시) 15(祿록) 16(廷정) 17(觀관) 18(季계) 19(在재) 20(昇승) 21(杓표) 22(太태)

 

羅州吳氏(나주오씨)

 

나주 오씨는 500년(신라 지증왕1)에 동래한 선조 첨의 24세손 현보(해주오씨의 시조)의 아들 5형제가 각각 분적할 때 제5자 숙규가 분적한 것이 확실하나 그후 3세의 세계가 분명치 않고 연대 차이가 있으므로 숙규를 시조로 하고 고려 때 중랑장을 지낸 그의 5세손 偃(언)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언의 5세손 자치가 조선 세조때 이시애 난을 평정한 공이 있어 나주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행 렬 자>

 

13(時시) 14(源원) 15(相상) 16(煥환) 17(圭규) 18(善선) 19(洙수) 20(根근) 21(烈열 燮섭) 22(敎교 均균) 23(鍾종) 24(泳영) 25(秉병) 26(熙희) 27(均균) 28(鎬호) 29(淳순)

 

樂安吳氏(낙안오씨)

 

락안오씨는 오첨의 32세손 오사용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때 북변에 합단의 환과 남변에 일본의 침입이 있어 이를 토벌할 때 김방경과 함께 참전했다. 그때 포로를 원제에게 바쳤는데 원제로부터 금비옥대를 받았으며 고려로부터는 자금어의 하사받고 락안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락안으로 하였다. 묘소는 전북 완주군 완주 봉림산에 설단되어 있다.

 

<행 렬 자>

 

15(漢한) 16(標표 林림) 17(煥환) 18(壽수) 19(欽흠) 20(東동) 21(休휴) 22(熙희) 23(睦목) 24(鉉현) 25(澤택 浩호) 26(相상 秀수) 27(燦찬 烈열)

 

同福吳氏(동복오씨)

 

시조 오현좌는 서기 500년(신라지증왕1)에 동래하여 함양에 정착하였던 오첨(시호문혜)의 24세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때 형 현보아들 령과 함께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동복군에 봉해졌고 형 현보는 해주군 아우 현필을 보성군 아들 녕도 동복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시조로 하고 본관을 동복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현좌의 둘째아들 숙귀는 군위오씨로 분적하였다.

 

<행 렬 자>

 

23(相상) 24(然연 炳병) 25(在재) 26(鐸탁 鏞용) 27(祿록) 28(秉병 根근) 29(默묵) 30(致치) 31(鎰일) 32(源원) 33(東동) 34(應응) 35(均균) 36(鍾종 鏞용) 37(海해)

 

寶城吳氏(보성오씨)

 

아득한 상고시대 중국 양자강 부근에 오왕부차가 있었고 그의 손자 류양이 천자로부터 오씨성을 하사 받았으며 오왕이 되어 오나라를 다스리었다. 이때부터 오씨가 비롯되었고 류양의 46세손 오첨이 500년(신라 지증왕 원원)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함양에서 22년 동안 살았다. 그의 8세 서랑에 강감찬이 있었고 11세 희는 고려태조의 국구였으며 18세 연총은 1107년(예종2) 부원수로서 여진을 토평하였고 24세 1자 현보 2자 현좌 3좌 현필 3형제가 1216년(고종3)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현보는 해주군 현좌는 동복군 현필은 보성군에 봉해져 각각 본관을 해주, 동복, 보성으로 삼았다. 보성오씨에서 분적된 오씨는 4본이 있으니 현필의 1자 숙부 2자 양의 후손은 보성오씨로 계승했고 현필의 제3자 원은 화순으로 제4자 광휘는 함양으로 현필의 6세손 사염의 제2자 천우는 장흥으로 현필의 제2자 양의 6세손 중귄은 흥양으로 각각 분적하였다. 시조 현필의 자는 응남이요 호는 성제이며 묘소는 충남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 취리산 남록 간좌에 있다.

 

<행 렬 자>

 

(부위공파)

21(相상 應응 煥환 宗종) 22(先선 在재 亨형) 23(啓계 鉉현 錫석) 24(鎬호 俊준 永영 淵연) 25(永영 植식 秀수) 26(世세 炳병 熙희) 27(均균) 28(鎭진) 29(泳영) 30(根근) 31(勳훈) 32(重중) 33(善선) 34(源원) 35(來래) 36(烈열) 37(達달) 38(鍾종)

 

(양무공파)

21(永영) 22(根근) 23(然연) 24(基기) 25(錫석) 26(洙수) 27(秉병) 28(燮섭) 29(在재) 30(治치 鎬호) 31(永영) 32(植식 杓표) 33(炳병) 34(敎교 圭규) 35(鍾종) 36(淵연) 37(寅인) 38(烈열)  39(基기) 40(善선) 41(泰태 泌필) 42(榮영 東동) 43(顯현 魯노) 44(重중 遠원) 45(鎔용 鎭진) 46(淳순 浩호)

 

延日吳氏(연일오씨)

 

시조 오흡의 선세계는 미상하나 본래 연일지방에 토착해 살던 사족으로 전한다. 그는 고려에서 전서를 역임했으며 중종때 형조판서를 지낸 오준은 그의 5세손이다.

 

蔚山吳氏(울산오씨)

 

시조 오정지는 500년(신라 지증왕1)에 중국에서 동래하여 함양에 정착하고 오씨의 비조가된 오첨의 후예이다. 오첨의 24세손 현보, 현좌, 현필 3형제가 1216년(고종3)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현보는 해주군, 현좌는 동복군, 현필은 보성군에 봉해지고 해주, 동복, 보성의 오씨로 각각 분적하였다. 그후 현보(해주오씨 시조)의 8세 차손 연지(시호 문충)가 고려말에 평장사로 학성(울산의 고호)군에 봉해졌으므로 해주에서 분적 연지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행 렬 자>

 

12(有유 羽우) 13(必필 世세) 14(宗종 鳳봉) 15(東동 根근) 16(光광 河하) 17(奎규 一일) 18(錫석 憲헌) 19(永영 奭석) 20(秉병 基기) 21(燮섭 鍾종) 22(廷정 洙수) 23(秉병 鐸탁) 24(泰태) 25(彬빈) 26(思사) 27(徵징) 28(鎭진)

 

長興吳氏(장흥오씨)

 

장흥 오씨는 오현필(보성 오씨의 시조)의 6세손 사충의 제2자 천우가 조선조에 병마절도사를 지냈는데 그의 후손들이 장흥에 세거하면서 보성 오씨에서 분적 천우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장흥으로 하였다.

 

<행 렬 자>

 

46(彦언 煥환) 47(植식 志지) 48(炳병 鎭진) 49(基기 淑숙) 50(錫석 根근) 51(洙수 炳병) 52(相상 喆철) 53(燮섭)

 

全州吳氏(전주오씨)

 

시조 오준민은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의 9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병부상서로 공이 있어 완산(전주의 고호)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주를 본관으로 해서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40(錫석 起기 近근) 41(鍵건 志지 億억) 42(淵연 國국 守수) 43(東동 命명 雲운) 44(炯형 泰태 興흥)

 

平海吳氏(평해오씨)

 

시조 오극중은 해주오씨 시조 오현보의 원손이라 하나 세계가 중절되어 확실하지 않다. 그는 고려에서 문하시중을 지내고 동지추밀원사에 추증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본관을 평해로 해서 세계를 계승했다.

 

<행 렬 자>

 

26(元원) 27(鎔용) 28(浩호) 29(根근) 30(烈열) 31(在재) 32(鉉현) 33(泰태) 34(柱주) 35(炳병) 36(基기)

 

咸陽吳氏(함양오씨)

 

시조 오광휘는 오씨의 비조 오첨의 24세손 현필(보성오씨 시조)의 제4자이다. 1216년(고종3) 현필이 두 형과 함께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보성군에 봉해지고 보성오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의 제4자 광휘가 고려말에 문과에 장원하고 상서성좌복사를 거처 흥위위상장군으로 삼척 울진에 출몰했던 외적을 토평한 공으로 추충정난광국공신에 서훈 삼중대광, 금자록대부, 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보성오씨에서 분적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행 렬 자>

 

13(以이) 14(三삼) 15(學학) 16(命명) 17(浩호) 18(相상) 19(燦찬) 20(坤곤) 21(錫석) 22(o) 23(植식) 24(世세)

 

咸平吳氏(함평오씨)

 

시조 吳岑(오잠)은 오씨의 비조 오첨의 24세손 현보(해주오씨 시조)의 제4자이다. 그는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 은자광록대부, 문하시중평장사삼중대광검교, 태자 태사 등을 역임하고 좌명공신으로 함풍(함평의 고호)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잠을 시조로 하고 해주에서 분적 본관을 함평이라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시조의 묘소는 충남 공주군 공주읍 태진등에 있고 음 10월 초정일에 향사한다.

 

<행 렬 자>

 

25(鎭진) 26(源원) 27(秉병 東동) 28(榮영 炅경) 29(在재) 30(錫석 鎬호) 31(澤택) 32(植식) 33(炳병) 34(基기) 35(鍾종) 36(泰태) 37(柱주) 38(烈열) 39(均균)

 

海州吳氏(해주오씨)

 

시조 오현보는 오씨의 비조 오첨의 24세손이다. 서기 500년(신라 지증왕1)첨이 중국에서 동래하여 함양에서 살면서 오씨의 연원을 이루었고 그의 자손이 신라 역조에서 벼슬을 하였으며 11세 회는 고려 태조의 국구이었다. 그리고 18세 연총은 1107년(예종2) 부원수로서 여진을 토평하였고 24세 현보, 현좌, 현필 3형제가 1216년(고종3) 계단을 토평한 공으로 현보는 해주군, 현좌는 동보군, 현필은 보성군에 봉해졌으므로 해주, 동복, 보성의 오씨로 각각 분적하였고 현보는 해주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나 고려조에서 검교군기감을 지낸 인유를 1세조로 계대파는 피가 있다.

 

<행 렬 자>

 

(세수는 오인유로부터의 세수임)

24(泳영) 25(根근) 26(煥환) 27(世세) 28(錫석) 29(澤택) 30(植식) 31(炳병) 32(基기) 33(鎭진) 34(源원) 35(柱주) 36(烈열) 37(均균) 38(鍾종)

 

和順吳氏(화순오씨)

 

시조 오원은 현필(보성오씨 시조)의 제3자이다. 현필에게 아들 4형제가 있었는데 장자숙부와 2자 양은 보성오씨의 계통을 이어왔고 3자 원은 후손들이 화순에 세거하면서 원을 시조로 하고 보성 오씨에서 분적 본관을 화순으로 하였다.

 

<행 렬 자>

 

25(敬경) 26(秉병) 27(炫현) 28(在재) 29(鍾종) 30(永영) 31(植식) 32(炯형)

 

興陽吳氏(흥양오씨)

 

시조 오광휘는 현필(보성오씨 시조)의 제4자이다. 그의 아들 완이 고려 충목왕 때 문과에 급제 문하사랑 평장사를 지내면서 공이 있어 흥양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광휘를 시조로 하고 보성오씨에서 분적 본관을 흥양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행 렬 자>

 

23(命명) 24(煥환) 25(在재) 26(鉉현) 27(永영) 28(根근) 29(炳병) 30(均균)

'대한민국 성씨와 본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성온씨(溫氏(鳳城))  (0) 2010.03.29
의령옥씨(玉氏(宜寧))  (0) 2010.03.29
오씨(吳氏)  (1) 2010.03.29
부계예씨(芮氏(缶溪))  (0) 2010.03.29
영씨(永氏)  (0) 2010.03.29
영씨(影氏)  (0) 2010.03.29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1)

  • 오현석
    2021.05.28 08:13

    안녕하십니까. 실례합니다만, 인터넷의 특성상 정확하지 아니한 정보가 그대로 널리 유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창 오씨가 해주 오씨에서 분파하였다는 과거 일각의 주장은 오류에 불과함이 이미 밝혀져 있답니다.
    https://blog.daum.net/mindfulrefresh/14

    오씨 대동 종친회는 여러 관파 어르신들이 두루 의논하시어 올바른 우리나라 오씨 상계도를 2020년 대동종보 제9호에 싣기도 하였습니다.
    https://blog.daum.net/mindfulrefresh/76

    감사합니다.

Designed by CMSFactory.NET